[인턴 톡톡]“저는 당신의 세계를 배우고 싶어 왔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2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인턴=회사나 기관 따위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에 앞서 훈련을 받는 사람. 또는 그 과정.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릅니다.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스펙’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딘가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오늘도 뛰고 있는 인턴들의 다양한 삶을 만나봤습니다. 》
 
정말 너무해요

“파마나 염색하러 온 손님 중에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니까 식사를 시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꼭 카드를 주면서 식당에서 받아오라고 하죠. 어이없어 주인아저씨를 쳐다보면 단골손님이라 말도 못하고 그냥 해주기를 바라죠. 미용 기술 배우러 왔지, 음식 배달하러 온 것 아닌데….” ―오솔비 씨(21·미용실 인턴)

“직원들 따라 거래처에 갔는데 그곳에 계신 분이 대뜸 ‘김 씨 와이프인 줄 알았어’라고 말하더라고요. 애써 웃었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갑자기 그런 농담을 듣는 게 불쾌하더라고요.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건지, 직원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건지, 근무시간에 와이프 데리고 거래처 가는 사람도 있나요?” ―이모 씨(23·대학생)

“먹는 것 갖고 말하면 참 치사한데, 인턴이라고 따로 식비가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한 달에 130만 원 받는데 근무지가 시내이다 보니 점심 먹는 밥값만 30만 원 이상 들더라고요.” ―이모 씨(20대)

“외국계 회사가 좋다고요? 정직원은 그럴지 모르지만 인턴 대우는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그냥 막 부려먹는 거죠. 캐나다 회사에서 일했는데 사전 고지도 없이 일주일 내내 야근만 시키더라고요. 수당은 고사하고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오후 4시쯤 업무 지시가 떨어지면 오후 10시, 11시가 훌쩍 넘죠.” ―김모 씨(24·대학생)

“오전 9시까지 출근하라고 해놓고 정작 자기들은 오전 10시가 넘어 나오더라고요. 방송제작 관련 업종이라 대체로 아침부터 일하는 분위기는 아니거든요.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이 사람들이 거의 이런 식인데 문제는 그 시간에 뭘 하라고 가르쳐주는 것도 없거든요. 출근하면 장비 나르는 것이나 시키고…. 출근해 회사에 나와 있어도 마땅히 할 일도 없이 방치되는 것 같아 씁쓸했어요.” ―강은지 씨(23·창원대)
 
꿈의 인턴도 있어요
 
“인턴도 역시 공기업이 좋더라고요. 주변에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열정페이만 받는 친구들도 많은데 제가 일했던 공기업은 정직원이랑 비슷한 대우를 해줬거든요. 야근은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권세한 씨(25·성균관대)

“그다지 크지 않은 회사에서 인턴을 했는데 일에 있어서는 똑같은 동료로 대우해주더라고요. 직원들 회의에 참석해 똑같이 의견을 내고,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볼 수 있었거든요. 근무기간이 짧다는 것만 제외하면 진짜 회사를 다닌 느낌이었죠. 지금은 그곳에 정식으로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박현조 씨(23·부산대)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인턴은 근무기간과 관계없이 실무 체험을 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합니다. 근무기간 동안 회사는 좋은 인재인지 확인하고, 인턴은 자신의 적성과 업무가 맞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인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인턴제도가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왜곡돼 활용되면서 기업 내의 또 다른 비정규직처럼 돈을 덜 주고 부려먹는 인력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59)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죠
 
“동영상 서비스 회사에서 일했는데 여기는 직원들 주 업무가 유튜브, 페이스북으로 영상 보는 것이더라고요. 왠지 업무시간에 노는 것처럼 느껴져서 쭈뼛쭈뼛 했는데 좀 지나니까 행복하더라고요. 제가 영화나 음악 동영상 보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돈 받고 노는 기분이랄까요? 천국이 따로 없었죠.” ―황보송 씨(25·위스콘신 매디슨대)

“언론사에서 인턴을 했는데 파견된 곳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특검 사무실이었어요.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거죠. TV에서만 보던 거물들이 줄줄이 들어오는데 국민의 분노를 담아 한 방 날려주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을 청소하는 한 미화원 할머니가 ‘염병하네’ 한 방으로 뜨시더라고요.”―정모 씨(28·대학생)

“출판사에서 인턴을 했는데, 별로 큰 기여를 한 것도 아닌데 일하는 동안 제작에 참여한 책 뒷장에 직원들과 함께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인턴이라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배려를 해준 거죠. 왠지 울컥하더라고요. 유아용 책이었는데 나중에 애 낳으면 아이에게 꼭 보여줄 겁니다.”―신유정 씨(25·인천대)
  
나 인턴 맞아?
 
“회계법인에서 일했는데 전 완전히 인턴의 탈을 쓴 정직원이었거든요. 사업주의 세금관리 일을 맡았는데 여러 명을 맡은 데다 한 분이 퇴사하면서 그분의 몫까지 떠안았죠. 그러다보니 실수가 생겨 욕도 많이 먹었는데 제가 인턴이란 걸 잊으신 건지….”―전모 씨(23·대학생)

“취업을 위해 워낙 인턴을 많이 하다보니, 인턴이 되기 위한 인턴까지 해야 할 판이라는 푸념이 많아요. 정직원 입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인턴 시험을 준비할 때면 쓴웃음만 나와요. 그렇게 힘들게 들어갔는데 회사 선배들이 외부에 저를 소개할 때 대학생 기업 체험단인 서포터스로 소개하더라고요.”―김모 씨(27대)

“신입인데도 채용 조건에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경력자가 아니면 결국 인턴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죠. 적성? 꿈? 그런 것 다 따지면 아무것도 못해요. 뭐라도 많이 해놓으면 최소한 열심히 살았다는 건 인정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전부 경력을 요구하면 저 같은 신입은 어떻게 취직을 하나요?”―홍선아 씨(24·덕성여대)
 
못다 한 이야기
 
“인턴으로 일할 때는 반드시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인턴표준협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근로조건과 급여 등을 꼼꼼하게 살피고 궁금한 건 꼭 인사담당자에게 물어 확인해야 해요.”―윤모 씨(대기업 인사 담당자)

“거의 모든 취업준비생들이 체험형 인턴보다는 채용형 인턴을 하고 싶어 할 거예요. 체험형 인턴으로 몇 달 일하다 나오는 것을 반복하면 시간만 흘러가고 남는 게 없어요. 그러니 불안해질 수밖에 없죠. 아무리 인턴이지만 하루 종일 근무를 해야 하니 따로 뭘 준비하기도 어렵고요.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몇 달마다 근무지에 따라 방을 옮겨야 해서 아주 힘드네요.” ―이채영 씨(26·영남대)

“최근 비정규직이나 인턴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드라마 ‘미생’이 대표적인 예죠. 앞으로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콘텐츠는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김헌식 씨(43·대중문화평론가)

“많은 인턴들이 복사 같은 잡일만 시키고,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는다고 말하는데 조금 잘못된 시각인 것 같아요. 회사는 학교가 아니고, 실전이죠. 실제로 일반 직원들도 다 복사하고 잡일하면서 배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 자체보다 일하는 자세를 먼저 배웠으면 합니다.”―송모 씨(37·회사원)

“인턴을 여러 군데서 했다고 취업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원하는 회사에 맞는 인턴 경험을 했는지가 중요하죠. 입사하려는 회사와 업종이 다른 회사에서 아무리 많은 인턴을 했다고 해도 입사시험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자기소개서에서 인턴 경력을 골라 쓰는 것도 방법입니다.”―이모 씨(45·대기업 인사팀장)
 
오피니언팀 종합·김문희 인턴기자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공기업 인턴#비정규직#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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