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43>입동 전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1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생애 네 번째 오토바이 사고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아, 또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구나, 계절은 참 정직하기도 하지’ 대충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를 내는 것은 항상 이맘때쯤, 배추 농사 무 농사가 얼추 마무리되는 입동 전후였다. 할 짓 없으니까 창자에 바람만 잔뜩 드는 거야. 세 번째 오토바이 사고가 났을 때였던가, 이제 곧 칠순을 바라보는 그의 어머니가 끌탕을 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읍내 ‘노을다방’ 미스 심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국도변을 달리다가 논두렁으로 그대로 추락, 왼쪽 발목 골절상을 당하고 말았다. 커피 배달을 돕겠다고 자청해서 호기롭게 나선 길이었는데, 덕분에 그는 보험회사 위로금 말고도 오십만 원 정도 더 편지봉투에 넣어 미스 심에게 건네야만 했다. 그날 사고 덕분에 미스 심은 안고 있던 커피 잔 보자기에 얼굴을 부딪쳐 코뼈가 나가고 말았다.

이번엔 읍내 단란주점에서 맥주를 마시고, 야간 음주 오토바이 운전을 감행, 그대로 전봇대에 부딪힌 경우라고 했다.

거, 그러니까 큰아버지께서 그 밤에… 선글라스를 쓴 채 오토바이를 모시다가….

고향 근처 병원 병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서울 병원으로 모시고 올라온 그의 사촌동생이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선글라스뿐이겠냐, 가죽점퍼도 입으셨겠지. 그는, 환자복을 입고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아버지를 보면서, 환자복 위에 걸쳐진 가죽점퍼를 보면서, 그렇게 속엣말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올해 일흔넷이었다.

6인실을 지정받고 입원한 지 사흘쯤 지났을 때였던가,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로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으로 내려갔다. 커피를 한 잔 마셔야 하는데, 이거야 원 스타일이 안 살아서…. 병실 내 다른 환자 들으라는 듯 계속 그 말씀을 큰소리로 반복한다는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고 함께 찾아간 커피전문점이었다.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한 아버지는 카운터 앞에 서서 주문을 하는 그와 유리 진열장에 놓인 베이글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다방커피’에 익숙한 아버지를 생각해 바닐라라테 한 잔과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그가 그렇게 주문을 마쳤을 때, 그의 아버지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가씨도 한 잔 마셔.”

그의 아버지는 카운터에 서 있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멀뚱한 표정으로 되묻자, 그의 아버지는 ‘그쪽도 한 잔 마시라고. 아저씨가 한 잔 살 테니까’ 하면서 깁스한 팔을 카운터 위에 척 올려놓았다. 그는 아버지의 등을 황급히 끌어안고 뒤로 돌아섰다. 그러곤 진동 벨을 챙겨 출입문과 가까운 테이블로 걸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그저 고개만 한 번 갸우뚱거리고 말았을 뿐, 별다른 항의는 하지 않았다.

“아버지, 제발 그러지 좀 마세요.”

그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를 붙들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네 아버지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라. 젊을 땐 얼마나 착실한 사람이었는데… 그게 다 나이 먹는 게 허해서… 그래서 그런 게 아니겠니….

“아버지, 이런 데서 이러시면 잡혀가요. 여긴 그런 곳이라고요.”

그의 말에 아버지는 시선을 피하면서 흠흠, 헛기침만 몇 번 했을 뿐이었다. 아버지 허한 거 아는데요… 그러면 어머니는요…. 그는 그런 말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커피전문점 밖으로 나가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아야만 했다. 통 유리창 바로 앞에 서서, 그의 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전화 통화를 했다. 전화는 아버지의 담당 의사에게서 온 것이었다. 커피전문점의 오디오 소리가 너무 커서 밖으로 나온 것인데, 그래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그는 몇 번인가 네? 네? 거리면서 되물어야만 했다. 간수치, 정밀검진 같은 단어들이 띄엄띄엄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고… 통유리창 너머 그의 아버지가 테이블 위에 있는 진동 벨을, 부르르 떨리는 진동 벨을, 왼손에 쥔 채 안절부절 어찌할 바 몰라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담당 의사는 계속 검진 날짜를 체크하면서 말을 끌었고, 그의 아버지는 당황한 얼굴로, 그러나 애써 그것을 감추려 노력하면서 진동 벨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그러다가 그의 아버지는 결국 진동 벨을 척, 귓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라는 아버지의 입 모양이 그대로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아버지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가만히 거기에 서 있었다. 입동 전후였다.

이기호 소설가
#입동#아버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