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에 두 번 낙방하고 세 번째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두 번의 실패로 가문의 명예에 한껏 먹칠을 한 상태였다. 유명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 마음에 들기 위해, 수군거리는 고향 사람들의 조롱과 동정을 잠재우기 위해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 했다. 하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끊어질듯 팽팽한 긴장의 압박 속에 마침내 폭발하듯 그의 신경조직이 와해되었다. 1844년 1월 어느 날 밤 프랑스 북부의 캄캄한 지방도로를 달리고 있던 마차 안에서 그는 말고삐를 놓고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몸은 나무토막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자신이 낙오된 인간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이 사건(간질 발작) 이후 그는 가문의 수치, 영원한 미성년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잉여적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잉여성이 그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어,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에 마음 놓고 매달릴 수 있었다.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20세기 모든 작가의 스승이 된, ‘보바리 부인’의 작가 플로베르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일찍 죽어 젊은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에 얹혀살던 어린 사르트르는 어쩌다 집에서 소란이라도 부리면 어머니로부터 “조심해!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고작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있던 아버지의 부재는 아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기도 했으나 동시에 자신이 잉여적 존재라는 사실을 아프게 자각했다. 누구로부터 태어났는지, 무엇하러 세상에 나왔는지 가늠할 길조차 없었으므로 그의 존재는 한없이 불안하고 정당화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곧 이 잉여성이 인간 모두의 보편적 조건임을 깨닫고 특유의 존재론을 개진하였다. 20세기 대표적 사상가의 실존 철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직업도, 가족도, 돈도, 친구도 없으므로 ‘나는 잉여(de trop)적 존재다’라고 했던 로캉탱(소설 ‘구토’의 주인공)처럼 우리 사회 젊은이들도 이렇다 할 목표나 열정 없이 무의미하게 삶을 소비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잉여’라고 부른다. 인기 폭발의 웹툰 ‘이말년씨리즈’가 잉여적 감각을 대표하고 있고, ‘잉투기’라는 영화도 있으며, 병신스러운 행동이라는 뜻의 ‘병맛’, 댓글로 투쟁한다는 ‘키보드워리어’ 등의 은어들도 있다.
사회적 경쟁에서 낙오될지 모른다는 젊은이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잉여’라는 말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저’라는 말이 유행했고, 거기에 신자유주의 비판을 얹은 ‘88만 원 세대’와 ‘점령하라’(오큐파이)가 위세를 떨쳤으며, 그들을 위로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리기도 했다. 요즘에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1:99라는 숫자로 글로벌한 잉여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멀리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파리에서 정신적 난민 생활을 하던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이 자신들을 ‘잃어버린 세대’로 칭하기도 했었다.
젊은이 특유의 소외감은 현대 사회 고유의 현상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때문만도 아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회의 청춘은 언제나 잉여였다. 아니 모든 인간은 언제나 잉여였다. ‘잉여잉여’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과감히 나와 종이책을 비롯한 자연의 물성(物性)과 접촉하는 일이 더 건강한 힐링이 아닐까? 접속이 아니라 접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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