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광화문 광장’ 읽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옛 중앙청.
옛 중앙청.
광화문 앞 광장을 운전하며 지날 때는 우툴두툴한 바닥이 차바퀴와 부딪치는 덜커덩 소리와 요동치는 승차감이 싫다. 유럽 같으면 촘촘하게 돌이 박힌 도로가 로마시대의 흔적이거나 최소한 수백 년 전 마찻길이어서 도시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유산이지만 길이 500m 왕복 10차로의 아스팔트 차도 위에 뜬금없이 깐 이 돌바닥은 도대체 무슨 멋이란 말인가? 불편하기만 한, 맥락 없는 키치(kitch)다. 두 차도 사이의 휑한 중앙광장에는 언제나 관광객과 시민들이 북적이고 있다. 광장의 설계자는 이 인파를 자기 디자인의 성공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때는 화려한 꽃밭, 어느 때는 물줄기 뿜어 오르는 분수, 또 어느 때는 도심의 스키장으로 변신하는 이 광장은 그야말로 트랜스포머티브(transformative)하다. 수도의 상징적 장소로는 너무나 천박하고 삭막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잔디와 들풀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려 제법 전원적인 풍경이지만 그 밑이 콘크리트 바닥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맥락 없기는 옆에 늘어선 흰색 뾰족한 천막들도 마찬가지다. 영락없이 몽골의 게르(천막집)를 연상시켜, 외국인이 보면 한국의 역사적 뿌리가 몽골인가 착각하기 십상이다. 꽃을 심었다 뽑았다, 무대를 설치했다 허물었다 하면서 계절마다 들이는 돈은 또 얼마나 낭비인가.

나는 아름답고 웅장한 석조 건물 앞에 일직선으로 늘어선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던 시절이 참 좋았다. 광화문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도는 오른쪽 모퉁이 경기도청의 빨간 벽돌 건물 앞에서 원남동 가는 버스를 타고 대학을 다녔다. 거대한 중앙청 건물이 광활하게 흩날리는 눈발에 휩싸여 있던 젊은 어느 겨울날의 잿빛 풍경도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아주 어릴 때는 중앙청 외곽의 난간식 돌기둥 벽에서 놀기도 했고, 6·25 때는 꼭대기의 둥근 돔이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던 광경도 보았다. 그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식민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건물은 가루로 분쇄되었고, 나무는 뽑혀지거나 옮겨졌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궁궐을 가로막고 서 있던 웅장한 석조 건물이 일본 식민주의의 만행이었고, 박정희 시대에 복원된 광화문이 콘크리트 가짜 건물이라는 건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었다. 그것을 허물고 마치 우리가 식민 지배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듯이, 마치 광화문은 한 번도 불타 본 적이 없다는 듯이 복원한다고 해서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가?

형태나 재료의 면에서 불완전한 복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설령 완전한 복원이라 해도 그것이 복제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의 가짜를 다른 가짜로 대체하는 것이 무슨 그리 큰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첫 번째의 가짜에는 최소한 ‘나는 가짜다’라는 정직성이라도 있었다. 보드리야르의 말마따나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온 이중의 시뮐라크르(현실을 복제한 모사)일 뿐이다. 이념적 구호를 내세워 개인들의 사소하고 애잔한 기억과 건국 이후 수십 년간의 국가 역사를 지워버린 광화문 프로젝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급하고 무지막지한 폭력이며 오만이었다.

성곽을 복원한답시고 툭하면 옛집들을 헐어버리고, 야생동물의 통행로를 마련한답시고 걸핏하면 멀쩡한 도로 위에 인공 터널을 만드는 문화 권력들의 오만이 나는 너무 싫다. 그것을 막을 수 없는 개인의 무기력함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광화문 광장#중앙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