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우화 중에서 아마도 가장 대중적인 우화는 인간의 자웅동체설(雌雄同體說)일 것이다. ‘향연’에서 들려주는 이 전설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공처럼 둥글게 생긴 구형(球形)이었다. 팔이 넷, 다리가 넷, 둥근 목 위에 머리는 하나, 똑같이 생긴 얼굴이 반대 방향으로 둘이 있고 귀가 넷, 음부는 둘이었다. 지금은 남성과 여성의 두 가지 성(性)만 있지만 최초의 인류에게는 세 가지 성이 있었다. 즉 남성, 여성, 그리고 이 둘을 다 가지고 있던 제3의 성이다. 이 제3의 성이 자웅동체(androgyny)이다. 이 최초의 구형 인간들은 기운이 넘치고 야심이 담대하여 신들을 마구 공격했다. 그래서 그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제우스는 모든 사람을 두 쪽으로 쪼갰다. 마치 마가목 열매의 피클을 만들 때 그것을 두 조각으로 쪼개듯, 혹은 잘 삶은 달걀을 머리카락으로 자르듯 사람들을 정확히 절반으로 잘라 두 조각으로 만들었다. 반쪽의 몸들은 각기 다른 반쪽을 그리워하고, 찾아 헤매었으며, 찾으면 끌어안았다. 이때 본래 여자였던 사람은 여자를, 본래 남자였던 사람은 남자를, 본래 남·여성이었던 사람은 서로 다른 성을 찾았다. 영화 ‘헤드윅’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그림이 바로 플라톤의 우화이다.
이 우화는 동성애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인류학적 정당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향연의 끝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는 이 같은 동성애의 기원을 부정한다. 사람이란 자기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손발도 잘라 버리는데, 오래전에 잃어버린 자기의 반쪽을 무조건 좋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좋은 것(the good)을 갖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정의했다.
여하튼 플라톤의 저서 ‘향연’을 통해 우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 특히 남성 간의 동성애가 지식 사회에 만연한 관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 동성애는 지성적인 남자들의 지적인 생활방식이고, 더 나아가 청소년 교육의 일환이었다. 즉, 단순히 성적인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지식이 많은 장년의 남자가 젊고 우수한 미소년에게 지식과 덕성을 전해 줄 책임이 있다는,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멘토 개념이었다.
컴퓨터 과학 이론에 지대한 공헌을 한 앨런 튜링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1954년 42세의 나이에 청산가리가 주사된 사과를 한 입 베어 먹고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천재 수학자의 일대기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체계를 해독하여 영국의 승리를 끌어내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지만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법원으로부터 화학적 거세를 선고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30년 전인 1984년만 해도 동성애자인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에이즈로 사망했을 때 병원 측은 사망 원인을 ‘패혈증의 합병증’이라고만 밝혔고 신문들은 그가 에이즈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애써 부인했다.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또 애플의 팀 쿡을 비롯해 자신의 성적 취향을 당당하게 밝히는 유명 인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그리스 시대의 도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비록 내가 흔쾌히 공감할 수는 없다 해도 타인의 남다름을 인정해주는 세계로 진화해 가는 흐름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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