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오후 10시, 장소는 뉴욕. 습기 머금은 차가운 바람 속에 사람들의 발길은 끊기고, 상점들은 서둘러 문을 닫아 거리는 황량하다. 순찰 중인 경찰관이 철물점 앞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경관을 안심시키려는 듯 황급하게 자신이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한다. 20년 전 열여덟 나이에 서부로 떠나던 밤, 뉴욕에 남게 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아무리 먼 곳에 살더라도, 신분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정확히 20년 후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고. 담뱃불을 붙일 때 남자의 창백한 얼굴과 각진 턱,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오른쪽 눈썹 옆의 하얀 칼자국이 불빛에 선명히 드러난다. 경찰관이 된 친구는 20년 만에 만난 친구가 시카고 경찰에서 협조 의뢰해 온 지명 수배자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 ‘20년 후’의 이야기다.
현실이 허구를 닮는 것일까. 6월 30일 마이애미 법정에서 판사와 도둑으로 만난 두 중학 동창생의 기막힌 사연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판사는 여성 백인이고, 피고는 남성 흑인이다. 두 사람의 나이는 49세, 그러니까 66년생이다. 심리를 마친 후 잠시 머뭇하다가 판사는 “혹시 노틸러스 중학교에 다녔나요?”라고 묻는다. 얼굴을 든 피고인이 “아 이런!” 하고 놀라며 오랜 친구를 만난 반가움에 천진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곧 자신의 기막힌 처지를 깨닫고는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린다. 해맑은 얼굴의 판사는 어조의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계속해 말한다. “난 언제나 네 소식이 궁금했어.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참 마음 아프네.” 그러고는 방청석을 향해 3인칭 화법으로 “중학교 때 이 친구 참 성격 좋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어요. 늘 나하고 축구도 같이 했죠(This was the nicest kid in middle school, he was the best kid in middle school. I used to play football with him)”라고 말했다.
레토릭의 배제가 가장 효과적인 레토릭이라고 말한 롱기누스의 수사학 교본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일체의 감상이 배제된 너무나 평범한 몇 마디 말 속에 그 어떤 과장된 표현보다 더 진한 향수(鄕愁)가 묻어난다. 늘 함께 축구를 하곤 했다는 한 문장 안에는 열다섯 살짜리 소년 소녀들의 풋풋한 한 시대가 압축해 들어 있다. 웃음소리 가득 찬 운동장에서 그들은 모두 미래에 대한 꿈과 야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35년이 지난 후 여학생은 판사가 되었고 남학생은 도둑이 되어 다시 만났다. 한 사람은 백인이고 한 사람은 흑인이라는 사실이 요즘에 고조되는 흑백 갈등과 관련하여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유튜브 동영상에도 미국의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려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동영상이 흑백 화합을 향한 힘들고도 긴 여정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엔 인간의 무한한 선의(善意)와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존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디 글레이저 판사는 피고인이며 동창인 아서 부스를 향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니. 슬프게도 우린 벌써 이렇게 늙었어(What‘s sad is how old we’ve become). 잘됐음 해. 이번 일 잘 끝내고, 앞으론 모범적으로 살기 바랄게.”
늙어감의 슬픔을 무심하게 언급하는 그녀는 놀랍게도 인생무상(人生無常)의 철학적 통찰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 지성적인 여성이 나는 정말 존경스럽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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