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에 6시간 내지 8시간 강의하면 1년 연봉이 1000만 원 내외다. 건강보험도 없다. 연구실 책을 나르다 몸을 다쳤지만 누구 하나 신경 써주는 사람 없고, 치료비도 전액 자기가 부담했다. 대학 시간강사의 열악한 환경을 책(‘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으로 써낸 서른두 살 김민섭 씨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한 한 편의 성장소설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거대한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한 사회학 개론서라 할 만하다.
결혼을 하고 아들이 태어났지만 도저히 대책이 서지 않아 그는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새벽에 나가 매장에 들어오는 150여 개의 물류 박스를 차에서 내리고 그것들을 창고에 다시 옮겨 쌓는 일이었다. 최저 시급 5580원에, 월 60시간 이상 일하면 직장가입자로서 4대 보험이 보장되었다. 이렇게 해서 새벽엔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낮엔 시간강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몸은 고달팠지만 이것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고, 부모님에게 건강보험 혜택도 드릴 수 있었다.
그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대학을 아주 떠났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도 함께 그만뒀다. 맥도날드는 그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겠지만, 대학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에는 다시 가게 될 수도 있지만 대학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대학은 정말 차가운 곳이다”. 그는 자신을 ‘노동자’도 ‘사회인’도 아닌 채 대학을 배회하는 유령이었다고 자조했다. 그리고 ‘309동 1201호’라고 숫자로만 쓰던 자신의 이름도 실명으로 밝혔다.
그동안 그에게 맥도날드는 신자유주의의 표상이었다. 모든 젊은이들처럼 아마 그도 신자유주의는 악(惡)이며, 맥도날드는 미 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과 맥도날드의 차이점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맥도날드에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제도나 매뉴얼이 꼼꼼하게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흔히 합리성의 표상으로 여겨지던 대학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고담준론을 논하는 교수들 밑에서 대학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시간강사, 조교, 아르바이트생들은 ‘학문의 길’이라는 편리한 변명 속에 가혹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그에게 대학은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책을 쓰고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학 밖에 더 큰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대학만이 지식을, 또는 학문을 생산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밖의 세상에 더 큰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고 이 연구실에 더 큰 ‘학문’의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체험이 그에게 노동의 가치를 깨우쳐 주었다는 사실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면서 노동이 가진 힘을 알게 됐습니다. 노동에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게 만들어주는,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강한 힘이 있더군요.”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의를 독점한 듯 사회를 마구 조롱하고 호령하던 대학 사회의 알량한 ‘지식’이 하찮고 비루한 ‘현실’ 앞에서 얼마나 위선적이고 무기력한 것인지, 그의 글은 생생한 몸의 언어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그어 놓은 사소한 한 줄의 금은 아마도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작지만 힘 있는 탈주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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