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사회탐구]벌집을 건드린 연금개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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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자녀가 여러 명인 집안이 있는데 장남의 씀씀이가 헤프다.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공부네, 사업이네 하며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갖다 쓴다. 참다못한 가족들이 장남에게 씀씀이를 줄이라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몇 달 동안 논의한 결과가 나왔다. 내용은 “다른 가족에게도 장남만큼 돈을 더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딱 이 짝이다. 공무원연금을 손질하라고 했더니 엉뚱하게 국민연금을 끌고 들어와 더 주겠다고 한다.

이번 개혁안은 ‘개혁’이라고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하다. 퇴직 후 받는 연금 수령액의 기준인 지급률을 1.9%에서 1.7%로 0.2%포인트 내리지만 20년에 걸쳐 깎는 것이라 장기근속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연금 납부 대상 소득상한액도 노조 주장대로 715만 원으로 결정돼 고액수령자도 줄지 않았고 최소 10년만 부어도 연금을 탈 수 있게 됐다.

유일한 승자는 공무원


공무원노조는 “선방했다”며 표정 관리를 하고 있겠지만 국민은 황당하다. ‘무늬만 개혁’이라는 질타를 받은 2009년 개혁안보다도 못한 안을 내놓고 웃고 있는 여야 대표에게 “웃음이 나오느냐”고 따지고 싶다.

“이번 개혁은 공무원연금을 반쪽 내려는 정부의 시도를 막아내고 국민연금까지 강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공무원연금개혁특위 간사인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말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소득대체율을 올린다고 하면 정말 국민이 좋아할 줄 알았다는 말일까.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후 가입자 2000만 명에 수급자도 400만 명을 넘어서 국민도 국민연금에 대해 알 만큼 안다.

국민연금은 일종의 강제저축이다. 국가가 노후를 보장하겠다며 소득 일부를 강제로 떼어가는 것이다. 소득대체율(평균 급여 대비 연금액 비율)을 40%에서 50%로 올리려면 가입자는 물론이고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 보험료율이 높아지면 가계는 가처분소득이 줄어 소비는 위축되고 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2007년 연금 개혁을 주도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말한 대로 “보험료율 인상은 현실성이 없고 만약 올린다 해도 민간경기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국민연금 개혁 방향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 40%’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개정된 것이다. 국민에게 고통을 떠안기는 이 개혁으로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2047년에서 13년 늦춰졌고 정부는 생색을 냈다. 그때는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해 지급률을 떨어뜨린 것을 개혁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지급률을 올리는 게 개혁이라고 한다.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말 바꾸기를 할 수 있나.

국민연금 더 준다고 좋아할까

공무원연금처럼 국민연금도 또 한번의 개혁이 불가피한 것은 맞다. 현재 국민연금은 2060년 소진되도록 설계돼 있지만 고령화 속도로 볼 때 그 시기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후부터는 미래세대에게 돈을 빌려서 연금을 줘야 한다. 그래서 국민연금 개혁은 필요하다. 다만 경제성장률, 인구구조 및 유럽 사례로 볼 때 그 방향은 재정건전성 유지여야 한다. 연금 개혁에 실패한 유럽 각국이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정치권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미흡함을 가리기 위해 국민연금이라는 벌집을 들쑤셨다. 벌이 쏟아져 나오면 정치권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연금개혁#공무원연금#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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