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을 뜯어보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은 53조4725억 원으로 무상복지 추세와 맞물려 정부에서 예산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 가운데 81%인 43조 원이 복지, 나머지가 보건에 배정돼 있다. 복지는 시대적 요청임에 틀림없지만 보건과 복지의 불균형이 이렇게 심할 줄은 미처 몰랐다.
메르스,보건 홀대가 빚은 참사
2006년 32%이던 보건 예산 비율은 점점 줄어들어 현재는 20%도 안 된다. 그나마 보건 예산의 대부분은 건강보험 재정을 메우는 데 들어가며 감염병 관리 예산은 쥐꼬리만큼도 안 된다. 해외 유입 전염병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사스와 신종 플루 파동을 겪었음에도 보건은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보건과 관련한 정부의 유일한 관심은 의료관광뿐이었다. 복지부 장관으로 진영에 이어 문형표 장관을 기용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부에 대한 기대가 기초연금이라는 것을 정확히 드러낸다.
연금 전문가인 문 장관은 지난해 기초연금, 세모녀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담뱃값 인상, 국가보조금 부정 수급 근절 등을 성공시켜 정부 부처 평가에서 복지부가 1등을 하도록 만든 주역이다. 하지만 문 장관은 경제학자로 훌륭했을지 몰라도 ‘방역 차르’는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장관 개인에 대한 비난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
메르스 사태는 보건에 대한 정부의 오랜 홀대가 빚은 결과이자 시스템의 실패로 봐야 한다. 복지부 전신인 보건사회부의 주된 임무는 보건이었다. 콜레라나 장티푸스가 창궐하던 시절의 위생과 방역은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만큼 보사부의 역할은 중요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보사부 의정국장은 경제기획원 예산국장, 재무부 이재국장과 함께 ‘정부 3대 국장’으로 꼽혔다. 엘리트 의사들이 의정국장으로 왔고, 의사들은 공공의료 및 보건정책에 중요한 설계자로 참여했다.
전 국민 건강보험 시행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실행된 이후 정책의 초점이 바뀌기 시작한다. 위생 수준이 올라가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정부는 공공의료가 어느 정도는 완성됐다고 믿었던 것 같다. 정부가 보건을 얼마나 홀대했는지는 복지부 장관에 의사 출신이 거의 없었던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부터 지금까지 장관 16명 가운데 의사 출신은 부동산 투기로 낙마한 주양자 장관 한 명뿐이다.
2000년대 초반 의약분업으로 의사들이 파업에 가세하면서 국민도 의사를 밥그릇에 민감한 이익집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인식 변화와 함께 보건과 관련한 정부의 주된 업무가 정책설계에서 의사-약사, 의사-한의사, 간호사-간호조무사 등 의료계 내부 갈등 조정으로 변화했다. 돈벌이에 맛들인 의사들은 응급의료 공공의료를 외면하고 돈 되는 분야에만 뛰어들었다.
美日엔 복지부가 없다
복지가 시대정신이라고들 한다. 여야 정치권의 무상복지 경쟁이 복지로 비대해진 오늘날 복지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으며 이것이 국가의 최우선 임무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복지부 대신 보건인적서비스부와 후생노동성이 있을 뿐이다. 이들 국가가 무엇을 최우선 가치에 놓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염병으로부터의 안전은 그 자체로 공공재이며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최고의 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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