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사회탐구]이화여대의 포스트모더니즘적 학생운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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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평생교육대학 개설로 시작된 이화여대 사태가 최경희 총장의 퇴진 거부로 또 한 번의 고비를 맞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나는 미래라이프대 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주장은 옹호하지만, 이들이 보인 배타성이 거슬린다.

농성장의 소녀시대 노래

고령화시대에는 누구든 평생 배워야 하며 대학도 그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건 맞는 방향이다. 하지만 평생 교육과 학위 수여는 다른 문제다. 사이버대 같은 훌륭한 평생교육기관이 존재하는데도 ‘고졸 후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를 위한 별개의 단과대학을 만든다는 건 교육부 스스로가 학벌을 인정하고 나아가 조장하는 것이다.

이화여대가 좋은 학교라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안다. 함께 일해 본 여기자 가운데 이화여대 출신은 능력 투지 대인관계 모두 수준급이었다. 재학생과 동문이 모교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특히 부러운 건 여대 특유의 자매애다. 교육부와 최 총장은 엘리트 대학으로서 학생들의 배타적 권리의식과 자부심을 경시했다가 큰코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시위 방식은 낯설다. 그 흔한 운동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한 번 부르지 않고 ‘소녀시대’ 노래로 연대감을 다진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것은 악성 댓글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정당성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재학생이나 졸업생에게만 농성장 출입을 허용하는 것은 운동권으로 오해받고 싶지 않은 심리가 낳은 자기 검열이겠지만 이번 시위의 특징인 배타성을 부각시킨다. 그렇다. 많은 이가 느끼는 이물감은 이화여대의 유별난 선민의식이었다.

이번 시위는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와 닮아 있다. 자발적이며 지도자도 없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수평적 소통 방식이 작동한다. 다만 상위 1%를 비판한 99%의 저항이었던 월가 시위와는 달리 이화여대는 기득권 수호라는 점이 다르다.

프랑스 68혁명의 기치는 ‘모든 금지된 것을 금지하라’였다. 기성세대의 가치관 규범 사회질서 도덕률까지 부인하는 것이 학생운동의 본령이다. 한마디로 기득권을 엎어버리자는 것이다. 한국 학생운동사를 살펴봐도 민주주의 통일 또는 노동자 농민을 위한 어젠다가 학생운동의 단골 메뉴였다. 이화여대는 사회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개혁보다는 학교 브랜드 가치 문제를 들고나왔다는 점에서 기존 학생운동의 문법과 공식을 깨뜨렸다.

이번 시위는 장기화되고 있다. 월가 시위가 그렇듯 시위 주동자가 없어 출구전략을 짜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학생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학생만이 학교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은 학교(재단) 교수 학생 3자가 주체이며 동문과 교직원도 지분을 가진 특수한 조직이다. 총장은 학생들이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나는 존재가 아니다.

배타적 학생들, 지도자 될까


이화여대 사태는 학생운동사를 새로 쓰고 있지만 역사의 진보는 아니다. 자기 이해관계에 이토록 민감한 학생들이 졸업 후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지성과 세력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건 이화여대의 정신이 아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이화여대#최경희 총장#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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