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저승사자’라는 별명답게 금융범죄 전문가 김형준 검사가 구속시킨 사람은 2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서슬 퍼런 검사가 고교 친구와는 양아치처럼 놀았다. ‘오랜 친구들이 주는 축복 중의 하나는 그들과 함께 바보짓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라는 철학자 에머슨의 말처럼 친구는 사회적 위신과 체면을 무장 해제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당사자가 검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절친’에서 ‘배신자’로
김 검사와 고교 동창 사이에 오간 메시지와 통화 내용은 술집, 여자, 오피스텔이 등장하는 저속함에 듣기가 민망하지만 유독 서로를 ‘친구야’라고 부르는 대목이 눈에 띈다. 김 검사와 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에서 각각 전교 회장과 학급 반장으로 만나 28년간 우정을 쌓아 온 ‘절친’이다. 고교 친구는 평생 친구라고들 한다. 인생에서 가장 꿈 많고 순수한 시절에 맺어진 관계여서 그럴 것이다. 친구 관계가 다른 관계와 다른 점은 일방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 친구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소위 ‘시다바리’ 노릇을 할 때부터 우정은 금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검사님의 이중생활’은 흥밋거리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수사 무마 청탁은 범죄다. 김 검사는 친구에게 “나도 살아야 너도 산다”며 거짓 진술을 요구하면서도 검찰에서는 “동창 사업가가 나를 팔고 다닌다”며 이중 플레이를 했다. 우정은 배신이란 양념을 필요로 한다던가. 격분한 친구는 김 검사와의 통화 내용을 폭로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실패해 사업가가 된 친구는 말한다. “나도 나쁜 놈이지만 검사는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우리 사회 대형 비리 이면에는 반드시 동문이나 친구 이름이 따라 나온다. 김정주 넥슨 회장과 진경준 검사는 서울대 동문이었다. 당시 대학을 함께 다닌 사람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진 검사를 포함한 몇 명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넥슨 주식 대박’ 사건이 터진 뒤 주변 친구들은 진 검사만 넥슨 주식을 받은 데 대한 배신감을 농담 반 진담 반 토로했다고 한다. 하필 왜 진 검사만 주식을 받았을까. 그에 대해 김 회장의 대답은 이랬다. “검사니까.”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서울메트로 지하철 매장 입점 로비 명목으로 9억 원을 챙기고 정 대표에게 홍만표 변호사를 소개해 준 법조 브로커 이민희 씨는 홍 변호사의 고교 1년 후배다.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고교 동창이 대주주로 있는 휴맥스해운항공에 일감을 몰아 주고 이 회사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해 배당금 3억 원을 챙겼다. 남 사장의 동문 사랑은 남달랐던 것 같다. 그는 2011년 다른 고교 동창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 손자회사인 부산국제물류(BIDC)의 하청업체로 지정해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고 개인 운전기사 월급 3000만 원을 받았다.
친구, 그 부패의 약한 고리
친구는 법이나 제도, 윤리의식 등 모든 잠금장치를 뚫는 만능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며 만인이 명문학교 입학 경쟁에 나서는 진짜 이유도 학연을 얻기 위한 목적이 크다. ‘스폰서 검사’가 개인의 일탈로 보이지 않는 까닭은 수많은 엘리트가, 아니 엘리트일수록 우정이란 이름으로 부패하는 줄도 모른 채 부패에 젖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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