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서 음악을 무시하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음악은 인터넷, 텔레비전, 라디오 등에서 항상 나온다. 식당, 술집, 클럽 등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버스와 비행기는 물론이거니와 지하철을 탈 때도 옆에 앉은 소년의 이어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장르의 노래만 항상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소에 우리가 듣는 음악은 개인이 직접 고른 노래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노래이기에 감동을 느끼기보다 시간을 때우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한국 대중가요 케이팝(K-pop)이 그렇다. 한국 문화 가운데 나와 맞지 않는 느낌이 드는 딱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케이팝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케이팝 팬들이 미국 팝 팬들처럼 12∼16세 소녀들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팬층이 다양해 정말 놀랐다. 주부, 군인 심지어 아저씨 팬(한국에서 ‘삼촌팬’이라고 불리는)들이 있는 게 신기했다. 물론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 살다 보니 대형 기획사의 힘으로 홍보하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형 기획사가 미는 케이팝은 술집, 가게, 텔레비전 등 어느 곳에서든 흘러나왔고,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음악을 들어야 했다. 나는 케이팝에서 도망갈 수 없었다. 아마 한국 음악 중에 케이팝만 있었다면 나는 한국에서 이렇게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인기 있는 가수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제작자, 트레이너, 작곡가, 안무가들이 모두 힘을 합쳐 한 명의 가수를 기획하고 만든다. 가수 역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케이팝은 유행을 따라 비슷한 노래만 나오고 있다. 이제 대안적인 음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다른 음악을 찾기로 했다. 록, 인디, 클래식 등 여러 콘서트를 다녔다. 한국에 이렇게 좋은 뮤지션이 많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이 음악들은 훌륭했다. 현재 수준보다 더 많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홍익대 인근의 유명한 음악 클럽에 가서 여자 보컬이 있는 밴드 공연을 봤는데 정말 좋았다. 토요일 밤이니까 관객이 100명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15명 정도밖에 없었다. 좀 아쉬웠지만 공연만큼은 좋았다. 이런 밴드 공연은 늘 흥분되고 재미있고 신난다. 좋은 밴드들이 열정적으로 연주해서 청중은 음악과 하나가 돼 같은 감정을 나눈다. 가끔 가수가 음정이 틀리거나 기타 연주자의 기타 줄이 끊어지는 것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는 그 느낌이 중요하다. 반면 케이팝은 항상 완벽을 꾀한다. 완벽한 노래와 춤, 스타일, 몸매…. 그러나 이런 것은 ‘과잉’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완벽해서 감동을 받을 수 없다.
록 공연이 언더그라운드에 머물지 않고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가 도약하는 무대로 생각하면 좋겠다. 음반 회사들이 록 밴드를 좀 더 많이 홍보하고, 사람들은 록 클럽에 가서 새로운 밴드를 더 많이 발견하면 좋겠다. 또 식당이나 술집, 가게 주인들이 케이팝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음악을 틀어서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록 음악이 아니어도 괜찮다. 한국에는 인디, 재즈, 클래식, 힙합 등 재능 있는 아티스트의 좋은 음악이 많이 있다.
케이팝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음악이 외국에서 일시적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랑받으려면 좀 더 진화해야 한다. 한국의 록과 인디 공연에 가 보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인이 어울려 공연도 하고 관람도 한다. 한국의 록과 인디 공연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본다. 국제적으로 한국 음악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홍보하면 좋겠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한국에서 여러 음악 장르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따로 있다. 요즘 옆집 남자가 케이팝 아이돌이 되고 싶나 보다. 가끔 밤늦게까지 똑같은 케이팝 노래를 연습해서 정말 짜증이 난다. 심지어 그는 음치다. 나는 옆집 남자의 꿈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다. 다만 새로운 노래를 듣고 싶을 뿐….
※ 벤 포니 씨(28)는 2009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 왔으며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있다.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이끌어낸 고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증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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