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前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 다니엘 튜더 “트럼프시대 역풍 막을 강력한 리더십 있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4일 03시 00분


前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 다니엘 튜더

다니엘 튜더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은 요즘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그는 한국과 관련해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책을 썼다. 최근에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 씨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다니엘 튜더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은 요즘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그는 한국과 관련해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책을 썼다. 최근에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 씨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박용 기자
박용 기자
《 외국인 경제활동인구가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넘었다. 올해 5월 말 현재 국내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142만 명 중 100만 명이 일을 하고 있거나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뜻이다.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다’는 칼럼으로 화제가 됐던 다니엘 튜더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34)도 한국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경제활동 외국인’이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에 가슴 아파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바꿀 세계의 미래를 걱정하며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이후 e메일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참, 모든 것이 미스터리입니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가 당선될 것으로 생각해 돈을 걸긴 했습니다. 상금은 원치 않았던 결과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생각해요.(웃음)”

 그는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고 영국의 도박사이트에서 60파운드를 걸어 290파운드(약 43만 원)를 벌었다고 귀띔했다.

 ―트럼프 후보가 왜 표를 얻었을까요.

 “세계 정치가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다이어트 콜라’처럼 효과는 없고 말만 번드르르한 인기 영합적 정치인을 유권자들이 선택하는 현상)로 흐르고 있어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반대파는 경제와 정치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탈퇴파는 문화 역사 독립성을 주장했어요. 설득 수사학 측면에서 ‘로고스(logos·논리)’만 강조한 잔류파가 감정에 호소한 브렉시트파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트럼프에게 맞선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비슷해요. 영감을 주진 못했잖아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세계화의 속도는 느려질 것입니다. 미국의 국가 이미지와 소프트 파워가 줄고 한국과 영국 등 동맹국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힘이 커질 겁니다. 트럼프의 경제적 보호주의와 국수주의가 얼마나 진지한 주장이었는지 아직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가 이를 실행하려고 한다면 한국의 안보나 자동차 수출 등에서 역풍이 불 겁니다. 트럼프 시대의 한국엔 강력한 리더십이 꼭 필요합니다.”

 ―한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스럽습니다.


 “영국 맨체스터에 계신 아버지가 ‘최순실이 어떤 사람이냐, 샤머니즘은 도대체 무슨 얘기냐’고 전화하셨더군요.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슬펐습니다. 다른 나라를 취재하듯이 180도 다른 보도를 하던 한국 언론들이 모두 같은 얘기를 한다는 건 정말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죠.”

 ―대통령의 사과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가 떨어졌으니 사과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한 블로거의 말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타이슨 존’에 빠졌다고 볼 수 있어요. 기행을 일삼는 미국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외계인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거든요. 대통령이 국민 언론 정치인을 설득할 힘이 없으니, 박근혜 정부도 ‘레임 덕’(절뚝거리는 오리), ‘데드 덕(죽은 오리)’에 빠지게 된 겁니다.”

 ―박 대통령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까.

 “박 대통령이 외신기자클럽에 온 적이 있는데, 미리 보내 준 질문에 답만 해서 준비된 쇼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적으로 안타까워요. 이 세상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나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청와대에서 자랐고, 부모님이 암살당했죠. 어떤 면에서 햄릿이나 리처드 2세처럼 외롭고 비극적인 ‘셰익스피어리언 트래지디(셰익스피어 비극)’ 주인공과 같아요. 그래서 최순실 같은 사람에게 더 쉽게 빠졌을 겁니다.”

 ―한국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한국은 친한 사람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는 사회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장단점이 있죠. 룰보다 사람, 관계를 더 중시하는 것이 민주정치에는 해가 될 수 있어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도덕적 권위를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적 교훈도 얻었으면 합니다. 영국이 50년, 100년간 해놓은 것을 한국은 5, 10년에 이루는 위대한 나라이니 충분히 극복할 거라고 봅니다.”

 ―대통령은 개헌을 얘기했는데….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개헌을 얘기했을지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순실 게이트’로 개헌 필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책임과 시스템의 문제가 큽니다. 책임총리와 국회가 지배하는 시스템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은 ‘성장 외에 철학이 없다’고 지적한 적이 있죠.


 “지난 대선 때의 새누리당 프로페셔널리즘(전문성)과 민주당의 철학을 합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새누리당이 야당에 비해 ‘프로페셔널리즘’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월호 사건 대응과 각종 비리를 보면서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철학이 있는 보수 정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약점으로 효율적 야당이 없다고 비판했는데…. 

 “2012년 대선 때 민주당원들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그들이 심리적으로 1980년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1980년대처럼 ‘반대’만 해선 20, 30대 유권자와 소통할 수 없습니다. 야당이 집권하려면 젊은 유권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업자나 대기업 출신 전문직 등 ‘프로페셔널한 진보주의자’를 많이 영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삼성 현대가 좋은 TV와 자동차를 만든 건 일본 독일 회사와 경쟁했기 때문”이라며 “한국 정치에도 경쟁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는 이유도 경쟁이 없어서입니까.

 “한국 사람들은 카스나 하이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맥주 회사들이 돈을 많이 벌어도 연구개발 투자는 많이 하지 않았어요. 맥주에 소주를 타서 먹기 때문에 ‘소맥용 탄산 보리차’라고 했잖아요. 요즘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맛도 나쁘지 않고요. 물론 ‘더부스’보다 좋진 않지만….(웃음)”

 그는 2014년 한국 친구들과 수제맥주회사 ‘더부스’를 세웠다. 크라우드펀딩으로 10억 원을 투자받아 미국 북캘리포니아 유리카에 있는 맥주 양조장도 인수했다. 내년 1월부터 미국 현지 생산을 시작하고 한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경쟁 때문이라면 계획 경제인 북한의 맥주가 더 맛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북한 맥주시장에도 경쟁이 있어요.(웃음) 북한은 도로와 철도 사정이 나빠 도시마다 양조장이 있습니다. 원산에 가면 평양의 대동강맥주 외에 지역 맥주도 마실 수 있죠. 대동강맥주보다 맛있는 맥주가 경흥맥주예요.” 

 2014년 북한을 방문한 그는 로이터통신 기자인 제임스 피어슨과 북한에 대한 책도 냈다. 한국어판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국 출판사 관계자가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관심이 별로 없다’고 거절해 한국판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제조업 기지인 울산과 경남 창원이 영국의 산업혁명 도시인 글래스고, 뉴캐슬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죠.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는 영국이 서비스 중심 국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제조업을 포기했어요. 뉴캐슬, 글래스고, 리버풀의 조선소가 문을 닫자 실업자가 늘고 주변 가게도 어려워졌어요. 범죄, 마약, 미혼모 등 사회문제도 늘었습니다. 런던 시티에서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소수의 금융인과 리버풀 맨체스터 뉴캐슬 등에서 복지로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지방과 런던의 격차가 커져 영국이 말레이 반도에 잘사는 싱가포르가 붙어 있는 모습과 비슷해졌어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스위스는 작은 마을에도 최첨단 공장이 있습니다. 스위스 공장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한 달에 1000만 원을 벌어요. 영국은 중국 등과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제조업을 아웃소싱했지만, 독일이나 스위스는 경쟁자가 만들 수 없는 제품으로 승부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하고 첨단기술을 생산시설에 도입했습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모두 발전시키는 게 가능할까요.

 “독일이 했다면 한국도 할 수 있죠. 한국이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었으면 해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딴 똑똑한 한인들을 많이 만났어요. 이런 분들이 한국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 강남에 정부 보조금을 받아 게임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많지만, 이들이 고용하는 사람은 고작 개발자 몇 명입니다. 최첨단 엔지니어링 기술로 무장한 독일의 ‘미텔슈탄트’와 같은 작지만 강한 중소·중견기업을 지방에 많이 세워야 합니다.”

 ―영국에서 배울 것은 무엇일까요.

 “거만하게 영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한국의 안전 문화가 영국만큼 된다면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통계로 보면 매년 28번의 세월호 사고를 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년 대선에서 정치권이 ‘세이프 코리아, 세이프 컨트리’를 공약했으면 좋겠어요.”

▼ 다니엘 튜더는 ▼

-1982년 영국 맨체스터 출생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
-영국 맨체스터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2010∼2013년)
-수제맥주회사 ‘더부스’, 대안언론 ‘바이라인’ 공동 창업
  
박용 기자 parky@donga.com
#대니얼 튜더#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더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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