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전트2(정양환)가 지구에 온 지도 꽤 오래. 허나 그는 지금도 헷갈린다. 이 행성의 ‘엄마’란 존재는 정말 초능력이 없는 걸까. 평소엔 연약하다가도 아이만 관련되면 헐크가 되는데. ‘모성(母性)’은 초자연이 부여한 원기옥(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필살기)이 아닐지. 그런데 요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이 초인들은 또 하나 묘한 성향을 보인다. “나는 ‘나쁜 엄마’인가요?” “난 ‘나쁜 엄마’인가 봐요”란 글들이 무수히 많다. 아니 슈퍼히어로인 줄 알았더니 ‘빌런’(악당)이었단 말인가. 그런데 눈 씻고 찾아봐도 “나는 나쁜 아빠입니다”란 글은 없다. 아빠들은 착한데 엄마들만 나쁜가? 에이전트2는 이 ‘잘못된 만남’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
○ 자녀 문제에 가슴 졸이는 엄마들
‘나쁜 엄마 고해성사’는 특히 육아나 주부 커뮤니티에서 많이 발견된다. 내용은 주로 엇비슷하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다 짜증을 냈어요.” “하루만이라도 다 잊고 친구들과 놀고 싶어요.” “회사 다니느라 아이에게 소홀했네요.”
확실히 엄마들은 전업주부건 맞벌이건 아이에게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최근 조사업체 ‘엠브레인’에 의뢰해 현재 육아 중인 30, 40대 남녀 200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였더니, ‘스스로 나쁜 엄마(아빠)라 느낀 적 있느냐’는 질문에 여성은 65%가 “(가끔 또는 자주) 그렇다”고 대답했다.
물론 남성도 같은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반응이 52%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들은 15%가 “자주”라고 대답해 아빠들 3%의 5배에 달했다. 육아 커뮤니티에 ‘나쁜 엄마’임을 토로한 적 있다는 40대 여성 A 씨(자영업)는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을 때 엄마는 ‘내가 뭘 잘못했나’란 생각부터 덜컥 든다”고 털어놨다.
그런 기분이 들 때 해결법도 남녀가 미묘하게 차이를 드러냈다. 아빠 엄마 모두 “반성하고 문제점을 찾으려 노력한다”를 최우선 순위로 꼽았는데 각각 75.8%, 52.7%였다. 하지만 “주위 사람이나 인터넷에서 의견을 구한다”는 방식도 여성은 20.9%나 선택했다. 남성은 5.5%에 불과했다. 30대 여성 B 씨(전업주부)는 “여전히 한국 사회는 자녀 문제는 엄마 책임이란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며 “남편과 얘기해도 잘 공감을 못해 친구나 커뮤니티를 찾는다”고 했다. ○ 끝없는 애정 vs 인내와 절제
사실 여성들의 이런 고민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 건너 미국도 최근 ‘나쁜 엄마’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7월 19일 개봉한 영화 ‘배드 맘스(Bad Moms)’를 통해서다. 총제작비가 2000만 달러(약 222억 원)로 할리우드 영화치곤 소품이었으나 북미에서만 1억7100만 달러(약 1900억 원) 수익을 거뒀다.
내용은 단순한 편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전념하던 여러 엄마들이 고단한 육아에 지쳐가다 일탈(?)에 나선다는 줄거리.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 밀라 쿠니스가 한 인터뷰에서 “아이를 카시트에 앉혀 놓곤 안전벨트도 안 채우고 운전한 적 있다”며 “엄마들은 누구나 ‘나쁜 엄마’란 생각을 하는 때가 있다”고 고백한 게 이슈가 되기도 했다.
현지에서 전문가들은 이 영화의 흥행을 두고 “이제 엄마들이 환상을 벗어던질 때”라고 조언했다. 러네이 크레이머 드레이크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모성은 완벽한 육아를 지향한다는 통념을 벗어던져라”라며 “타인의 육아법에 신경 끄고 자신과 아이의 유대감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마들의 고백’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미국 사회학자 비앙카 저못 씨는 “아빠가 인스턴트식품을 데워 먹이면 대단하다고 칭찬하면서 엄마가 그랬다면 힐난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은 에이전트2는 앞선 조사 결과에서 씁쓸한 대목을 발견했다. ‘좋은 아빠(엄마)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뭔가’란 질문에 남녀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48%가 ‘끝없는 애정’을 최고로 꼽은 반면, 엄마의 48%는 ‘인내와 절제’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어쩌면 당신의 아내가 몰래 베갯잇을 적셨던 눈물을 남편들은 사랑이라 착각하고 산 건 아닐는지. 진짜 빌런은 엄마가 아니었다. (다음 편에 계속)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