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살은 어려 보인다는 얘기를 들으셔야 해요. (아니면) 모성애밖에 없어요. 다 받아주세요.”(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뭣이라? 4일 방송에서 모델 이소라 말을 듣고 에이전트2(정양환)는 한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연하남 사귀는 팁’이라니. 그럼 연하녀도 마찬가진가. 동안 아니면 부성애가 답이란 말이지. 요원은 잠깐 애 딸린 신분은 망각하고 한동안 늘어진 뺨을 조몰락거렸다. “에휴, 선배 같은 이들 땜에 예능이 힘든 거예요.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니.” 뭣이라. 어느새 나타나 뒤통수를 때리는 에이전트26(유원모)의 목소리. 이 자식이… 내 속을 다 알아채다니. 요즘 연하남을 다룬 예능이 화제긴 하다. tvN ‘신혼일기’에는 실제 연상연하 부부인 안재현 구혜선이 나오고, ‘10살 차이’는 여성 연예인이 위아래로 10세 차이인 남성을 번갈아 만나는 내용을 다룬다. 과연 대한민국 TV 예능은 연하남이란 소재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 걸까.》
○ ‘연하남은 애완동물?’…TV 예능의 연하남 10년사(史)
21세기 들어 대중문화에서 연하남은 심심찮은 단골 소재였다. 이승기의 데뷔곡 ‘내 여자라니까’(2004년)나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2008년)는 대놓고 연상녀의 맘을 흔드는 노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는지, 딱 10년 전인 2007년 방송도 본격적인 연하남 예능이 등장했다. 코미디TV의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이었다.
2009년 시즌7까지 이어진 펫 시리즈는 제목만큼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외모에 경제력까지 갖춘 싱글 여성이 귀여운 연하 남성을 ‘분양(?)’ 받아 한집에서 같이 산다는 콘셉트. 목줄을 매단 남성을 끌고 있는 여성이 나오는 포스터는 지금 봐도 ‘세다’.
이는 당시 연상연하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만큼 틀에 갇혀 있었단 걸 반증한다. 연상녀가 어린 남자를 만나려면 돈이건 지위건 뭔가 있어야 하며, 연하남은 ‘토이 러버(toy lover)’로서 진부한 종속관계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때만 해도 남녀 성역할을 구분하는 전통적 연애상이 우세했던 시절”이라며 “낯설고 익숙지 않다 보니 더 자극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2008년 MBC ‘우리 결혼했어요’(우결)의 첫 연상연하 커플인 황보-김현중 편에서 김현중 별명이 ‘꼬마신랑’이었던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같은 우결의 가상 부부로 2009∼11년 출연한 조권과 가인은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주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다소 유약하고 까불거리는 이미지이긴 했으나 둘은 동갑내기처럼 동등한 눈높이에서 로맨스를 펼쳤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구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사고는 물론이고 생활방식도 변화했기 때문”이라며 “결국은 TV 예능도 보편적인 시청자의 인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 결국 문제는 나이가 아니건만…
재밌는 건 이후 연하남에게 초점을 맞춘 예능이 TV에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우결이나 여타 파일럿 프로그램에 연상연하 커플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나이 자체가 주목을 받진 않았다. TV 속에서도 밖에서도 ‘평범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7년 새롭게 등장한 연예 프로그램은 연상연하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사실 평가는 극과 극이다. 최고 시청률 5.6%(닐슨코리아)까지 기록한 ‘신혼일기’는 예능이 연상연하를 다루는 최종 버전이다. 진짜 부부가 나오니깐. 어떤 로망을 극화시킨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을 다룬다. 그저 남편이 나이가 어릴 뿐이다. 실제 4세 연상연하인 이재천 이현주 부부는 이 작품의 미덕을 ‘공감’이라고 짚었다.
“보면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살림에 대한 고민 같은 우리가 겪었던 일이 그대로 나올 때가 많아요. 남편이 사근사근하고, 아내가 거침없는 점도 닮았습니다. 확실히 연상연하는 뭔가 좀 다른 점이 있거든요. 다만 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린 연상연하라서 좋아한 게 아니에요. 편하고 대화가 통하고 사랑했기 때문이죠. 나이는 상관없잖아요.”
반면 ‘10살 차이’는 시청률 0.8%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극단적이진 않아도 출연 남성은 예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연상남은 안정적이고 의젓하며, 연하남은 활발하고 장난기 가득하다. 설 교수는 “요즘 시골에서 국제결혼을 색안경 끼고 보면 욕먹을 것”이라며 “이미 자연스러워진 패턴을 오히려 도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에이전트2는 묘한 혼란을 느꼈다. 우주에서 한국인만큼 나이 따지는 이들이 있을까. 놀이터에 가면 애들조차 서로 “몇 살이냐”고 묻는다. 진짜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면 연상연하 커플이란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때 에이전트26이 조용히 어깨를 다독거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