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한줄기 바람은 누구의 가슴을 식혀 주려는 걸까. ‘대(大)음원 시대’란 오지에서 삽질하던 에이전트2(정양환)와 7(임희윤)은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파기만 하면 뭔가 쏟아지는 광대한 자료들. 도대체 언제쯤 다 수습할 건지. 푹 젖은 귓가를 살랑 스치는 미풍. 문득 광천수를 찾아 떠난 에이전트26(유원모)이 떠올랐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될 테니. 앞서 요원들은 음원사이트 멜론의 주간차트 10년 치를 분석해 “접근은 쉬워졌는데도 취향은 획일화된”(서정민갑 평론가) 대중음악 시장의 신묘함을 감지했다. 그러나 어디 고구마 덩굴이 여기서 끊어지랴. 이런 타이밍에 꼭 흘러나오는 ‘빰빰 빠바밤’ (MBC 드라마 ‘하얀 거탑’ OST의 ‘B Rossette’). 미세먼지 마스크를 쓴 요원들은 다시 한번 삽을 들었다. 》
○ 팝콘형 소비에 방송 영향력도 커져
10년은 긴 세월이다. 그런데 아무리 차트를 훑어도 찾기 힘든 ‘가뭄의 콩’이 있다. 바로 팝송이다. 사실 이 차트는 가요 팝송 다 포함해 매긴 종합순위였다. 그런데 무려 524주 가운데 외국곡이 1위였던 건 단 한 차례. 2014년 2∼3월 2주 동안 정상에 올랐던 이디나 멘젤의 ‘렛 잇 고’(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가)다. 한 음악방송 PD는 “음원 시장은 ‘소장용’ 음반에 비해 음악을 영화관 팝콘처럼 가볍게 소비하는 풍조를 만들었다”며 “가요가 이런 흐름에 맞는 기획성이 뛰어나다 보니 상대적으로 팝송의 입지가 매우 좁다”고 말했다.
‘팝콘형 소비’는 주간차트 수위(首位) 곡의 1위 기간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조사 기간 초기인 2007년 6월부터 2년 동안 1위를 차지한 노래들은 평균 4.04주가량 정상에 머물렀다. 반면 최근 2년(2015년 6월∼2017년 5월) 동안은 평균 1.72주밖에 되지 않는다.
1개월 이상 1위에 머문 ‘메가 히트 곡’을 보면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2007년 6월부터 5년 동안은 원더걸스 ‘텔 미’(7주)나 소녀시대 ‘Gee’(8주) 등 모두 20곡이 1위에 한 달 이상 머물렀다. 반면 최근 5년 동안은 싸이 ‘강남스타일’(6주), 소유&정기고 ‘썸’(7주) 등 딱 절반인 10곡뿐. 올해는 에일리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6주)가 유일한데, 대박 난 tvN 드라마 ‘도깨비’ 삽입곡이었다.
방송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팝콘형 소비가 가진 특징이다. MBC ‘무한도전’ 가요제 곡이나 엠넷 ‘쇼미더머니’(총 3곡·4주)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음원 강자로 군림한다. 서 평론가는 “음반보단 음원이 TV 이벤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음원 시대에 대중음악의 성공을 가름하는 최고 기준은 단연 ‘화제성’”이라고 진단했다.
○ 아이돌이란 공룡의 새로운 도전
다행스러운 건 이런 ‘한없이 가벼운 획일성’이 개선될 여지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했던 ‘아이돌 음악’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상징하는 스타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한류 덕분에 한국 음악산업은 세계 10위인 8억3300만 달러(약 9398억 원·2015년 기준) 규모로 올라섰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음악시장도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음악이란 공룡이 다양한 장르와 분야를 흡수하며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멜론 주간차트를 장르별로 분석해 보면, 2010년까진 여전히 댄스음악이 전체 기간의 78.6%나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3년간에는 댄스음악의 비중이 48%로 확 떨어지고, 힙합 발라드 등 비(非)댄스음악이 오히려 절반을 넘었다(52%).
‘아이돌로지’ 편집장인 미묘 음악평론가는 “연예기획사들도 흑인음악이나 힙합 등과의 결합을 통해 음악적 완성도를 올리고 장르의 확장도 꾀하는 ‘다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대중의 취향도 조금씩 세분되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디어 끝이다. 땀범벅이던 에이전트2는 겨우 허리를 폈다. 이만큼 팠으면 됐겠지. 누가 막걸리 새참이나 갖다 줬으면. 그런데 에이전트7, 아무리 불러도 삽질을 멈추지 않는다. 왠지 모골이 송연해진 2. 천천히 뒤돌아선 7은 씩 하고 미소를 쪼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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