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의무, 애국심.’ 군대를 생각할 때 흔히 생각하는 단어들이다. 나는 2012년 주한 미군 정보병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서의 2년을 포함해 총 6년간 군 복무를 했다. 군 복무 기간 나는 대한민국 육해공군 장병들과 함께 일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함께 폭설을 뚫고 독도법(讀圖法) 훈련을 하고 무더위 속에서 행군을 같이하면서 희생, 의무,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과 지금까지도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어느덧 한국에서 4년간 생활하면서 군대 관련 트렌드가 점점 더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하철을 타도 디지털 무늬 혹은 군복과 비슷한 외투나 가방을 세련되게 착용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물론 나는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지 계급장이 거꾸로 달려 있거나 육군, 해군 문양이 동시에 그려져 있는 것 등 잘못된 것들만 눈에 띈다.
패션뿐만 아니라 군대 관련 문화는 미디어 쪽에서도 크게 유행하는 것 같다. ‘진짜 사나이’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태양의 후예’와 같은 드라마를 통해 보듯이 미디어가 대중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이 드라마 이후 대학원 친구들은 내게 이전 군대 생활에서 실제로 그렇게 위험한 임무에 자주 나갔는지 물어본다. 나는 그때마다 드라마와 실제 군대 생활은 많이 다르다고 대답한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군대 생활의 모든 현실을 보여주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미화하여 대중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드라마 또는 예능이기 때문에 힘들고 고된 훈련 속에서 많은 눈물과 감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훈련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군 생활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TV에서 보이는 고된 훈련과 위험한 상황들은 군대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갈등과 위험요소들을 모두 현실적으로 담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최전방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지뢰와 같은 위험요소가 많은 환경 속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매일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반대로 청소나 용품을 정리하는 일상적인 업무에서부터 가끔 지루한 사무 작업들까지, 심지어 때때로 어떤 임무도 없이 몇 시간 동안 멍하니 가만히 앉아 있는 날들도 많다는 것은 미국 군인뿐만 아니라 한국 군인들도 공감할 것이다.
그래도 ‘태양의 후예’의 인기는 이러한 미디어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주변 국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 드라마 조회수가 2억 건을 돌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군복과 비슷한 옷을 구입하는 등 군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태국의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이 드라마가 애국심과 책임감 있는 국민이 되는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며 국민에게 시청하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태양의 후예’나 ‘진짜 사나이’는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실제로 군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도 짚어줬으면 한다. 자살 예방 교육, 폭력 예방 교육 등과 같은 주제는 많이 놓치는 주제 중 하나다. 물론 다루기 힘든 주제이지만 정말 군 생활에서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뤄준다면 더욱더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나 또한 ‘태양의 후예’를 보면서 나의 군 생활을 회상하게 된다. 특히 드라마에서 애국심과 자부심을 보여줄 때마다 내가 군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열정과 명예로운 순간들을 떠올리곤 한다.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든 군 복무를 한 사람들에게 항상 “Thank you for your service(복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꼭 얘기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군 복무가 의무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생각보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많이 표현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아직 분단과 대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휴전 국가에서 대한민국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은 더욱더 강한 자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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