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지갑 불려주기’ 목표는 같은데 韓 공공부문 키울때 佛은 되레 줄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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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의 글로벌 뷰]문재인 대통령-마크롱 “일자리를 늘려라” 같은 진단, 다른 해법

문재인 대통령(왼쪽 사진)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왼쪽 사진)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 사회 현상을 파고들면 먹고사는 경제 문제와 직결된다. 더 쉽게 말하면 일자리 문제다. 유럽 대륙을 휩쓴 포퓰리즘 열풍이 실업률이 높은 나라에 더욱 강하게 불고, 유럽 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에 가담한 테러범 대부분이 실업자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 결정판이 선거다. 경제정책 방향이 틀렸든 아니면 운이 나빠 경제 불황에 걸려들었든 경제지표와 체감경기가 나쁘면 그 나라의 정권은 대부분 교체된다. 2008년 미국 유권자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1997년 헌정사상 첫 한국 정권교체를 이룬 것도 원동력은 경제위기였다.

한 달 전 불과 이틀 차이로 대한민국호와 프랑스호의 선장이 된 문재인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고용 절벽에 맞닥뜨린 청년들의 불안감은 ‘최순실 게이트’와 결합돼 촛불시위로 번졌고 변화와 개혁의 문 대통령을 불렀다. 40세 무소속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을 부른 것도 두 자릿수 실업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무능하고 부패한 기성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의 결과였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었고, 마크롱 대통령은 10%의 실업률을 2022년까지 7%로 낮추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두 대통령이 가고자 하는 목표는 같다. 일자리가 늘어나 국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그들이 돈을 쓸 것이고 그 돈으로 기업이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소득 주도 성장이라고 부르고, 마크롱 대통령은 구매력을 높인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는 비단 두 대통령뿐 아니라 세계 모든 대통령이 꾸고 있는 꿈이다. 결국 문제는 해법이다. 흥미롭게도 두 대통령은 정반대의 해법을 들고나왔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가장 빠른 방법이다. 당선되자마자 일자리 추경을 편성했다. 공공부문에 총 8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주요 공약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반대다. 공공부문 일자리 12만 개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대신 그 돈을 아껴 직업교육에 투입할 계획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정부가 만들어주겠다는 거다. 당장의 취업자 수를 늘리기보다 멀리 내다보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주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의 법인세를 올릴 계획이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기업 법인세를 낮추고 주거세도 폐지해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노동개혁 방향도 정반대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정책 1호로 들고나왔다. 기업가 모임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우려를 표명했다가 질책을 당한 뒤 회장 명의의 반성문을 제출하는 소동도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고용과 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개별 기업에 돌려주는 형태로 노동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대형 노조의 힘을 빼는 법인 셈이다.

이처럼 두 대통령이 전혀 다른 해법을 들고나온 데는 나름대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면서 명분과 전투력을 용인받은 노조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런던을 빠져나가는 해외 기업을 파리에 유치해야 하는데 ‘무서운 노조와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엄두를 못 낸다. 프랑스인 중에는 “난 일 더 하고 돈 더 받고 싶은데 노조 때문에…”라고 강성 노조를 탓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직도 신분이 불안한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와 사회 안전망 확충이 과제인 한국과는 처지가 다른 부분이 많다.

각각 인권변호사와 대형 투자은행 인수합병(M&A) 전문가인 두 대통령의 다른 인생 역정도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끈 대통령과 68혁명 이후 태어나 이념에 자유로운 대통령의 세대 차이가 원인일 수 있다.

어차피 일자리 창출에 ‘왕도’는 없다. 다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선배 국가인 프랑스가 정부 부담을 줄이고 기업 숨통을 틔워 주는 방향으로 잡은 이유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 한 번 늘어난 공무원과 복지는 줄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5년 뒤 정반대의 길을 걸은 두 대통령 중 누가 웃을까.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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