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민 파리 특파원의 글로벌 뷰]문재인 대통령-마크롱 “일자리를 늘려라” 같은 진단, 다른 해법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 사회 현상을 파고들면 먹고사는 경제 문제와 직결된다. 더 쉽게 말하면 일자리 문제다. 유럽 대륙을 휩쓴 포퓰리즘 열풍이 실업률이 높은 나라에 더욱 강하게 불고, 유럽 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에 가담한 테러범 대부분이 실업자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 결정판이 선거다. 경제정책 방향이 틀렸든 아니면 운이 나빠 경제 불황에 걸려들었든 경제지표와 체감경기가 나쁘면 그 나라의 정권은 대부분 교체된다. 2008년 미국 유권자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1997년 헌정사상 첫 한국 정권교체를 이룬 것도 원동력은 경제위기였다.
한 달 전 불과 이틀 차이로 대한민국호와 프랑스호의 선장이 된 문재인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고용 절벽에 맞닥뜨린 청년들의 불안감은 ‘최순실 게이트’와 결합돼 촛불시위로 번졌고 변화와 개혁의 문 대통령을 불렀다. 40세 무소속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을 부른 것도 두 자릿수 실업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무능하고 부패한 기성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의 결과였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었고, 마크롱 대통령은 10%의 실업률을 2022년까지 7%로 낮추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두 대통령이 가고자 하는 목표는 같다. 일자리가 늘어나 국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그들이 돈을 쓸 것이고 그 돈으로 기업이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소득 주도 성장이라고 부르고, 마크롱 대통령은 구매력을 높인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는 비단 두 대통령뿐 아니라 세계 모든 대통령이 꾸고 있는 꿈이다. 결국 문제는 해법이다. 흥미롭게도 두 대통령은 정반대의 해법을 들고나왔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가장 빠른 방법이다. 당선되자마자 일자리 추경을 편성했다. 공공부문에 총 8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주요 공약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반대다. 공공부문 일자리 12만 개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대신 그 돈을 아껴 직업교육에 투입할 계획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정부가 만들어주겠다는 거다. 당장의 취업자 수를 늘리기보다 멀리 내다보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주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의 법인세를 올릴 계획이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기업 법인세를 낮추고 주거세도 폐지해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노동개혁 방향도 정반대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정책 1호로 들고나왔다. 기업가 모임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우려를 표명했다가 질책을 당한 뒤 회장 명의의 반성문을 제출하는 소동도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고용과 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개별 기업에 돌려주는 형태로 노동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대형 노조의 힘을 빼는 법인 셈이다.
이처럼 두 대통령이 전혀 다른 해법을 들고나온 데는 나름대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면서 명분과 전투력을 용인받은 노조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런던을 빠져나가는 해외 기업을 파리에 유치해야 하는데 ‘무서운 노조와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엄두를 못 낸다. 프랑스인 중에는 “난 일 더 하고 돈 더 받고 싶은데 노조 때문에…”라고 강성 노조를 탓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직도 신분이 불안한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와 사회 안전망 확충이 과제인 한국과는 처지가 다른 부분이 많다.
각각 인권변호사와 대형 투자은행 인수합병(M&A) 전문가인 두 대통령의 다른 인생 역정도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끈 대통령과 68혁명 이후 태어나 이념에 자유로운 대통령의 세대 차이가 원인일 수 있다.
어차피 일자리 창출에 ‘왕도’는 없다. 다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선배 국가인 프랑스가 정부 부담을 줄이고 기업 숨통을 틔워 주는 방향으로 잡은 이유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 한 번 늘어난 공무원과 복지는 줄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5년 뒤 정반대의 길을 걸은 두 대통령 중 누가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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