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화재 참사 최소 58명 숨져… 아직 실종자 신원 조차 파악 못해
구호센터, 물품지원 등 우왕좌왕
메이 총리 사고 사흘 지나 방문에 ‘메이봇’ 별명까지… 리더십 붕괴 수준
보수당, 총리 불신임 투표도 검토
“여기에 뭐 하러 왔습니까. 부끄러운 줄 아시오.”
16일(현지 시간) 오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사고 생존자들을 위한 구호센터로 사용되는 성 클레멘트 교회를 방문하러 들어간 사이 경찰이 쳐놓은 저지선 밖에서 한 남자가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 성난 군중이 속속 몰려들었다. 메이 총리는 교회 밖으로 나와 빠른 걸음으로 검은색 밴 차량에 올라선 뒤 쫓기듯 떠났다. 군중은 “이 겁쟁이. 여기서 나가시오. 우리를 생각했다면 사고가 나자마자 왔었어야지” “물고기 같은 냉혈인”이라고 소리쳤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도 늦은 방문이었다. 그런 메이가 감정 없는 로봇 같다는 뜻의 ‘메이봇(maybot·메이와 로봇의 합성어)’이란 별명도 나왔다.
이후 런던 전역은 시위 물결로 뒤덮였다. 총선 패배로 휘청거린 메이 리더십은 사실상 붕괴 수준이다. 그렌펠타워 화재 이후 그의 소극적인 대처가 자초한 결과였다.
메이 총리는 사고 발생 36시간 만인 15일 처음 현장을 찾았지만 희생자나 생존자 대신 소방관만 만나고 돌아갔다. 그렌펠타워 근처 도로에서 턱을 괴고 비스듬히 서서 소방관들로부터 15분 동안 사고 설명을 듣는 그의 태도는 마치 남일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현지 언론은 이런 메이의 모습과 실종된 12세짜리 딸을 찾는 한 엄마를 끌어안고 위로하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의 사진을 대비해 소개했다. 게다가 메이 총리가 민주연합당(DUP)과의 공동 정부 구성 협상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메이 총리는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비판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은 사고 이후 우왕좌왕하는 정부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메이 총리가 16일 방문한 구호센터는 오후 7시가 되자 ‘문을 닫으니 생존자들은 모두 나가라’고 통보했다. 실종자를 어디서 찾는지, 구호품을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급기야 “대체 의회가 어디예요?” “우리는 구호품이 있다는데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요”라고 양면에 쓴 플래카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까지 생겼다. 이 때문에 “우리가 가난해서 이런 대우를 받는 것 아니냐”는 말도 쏟아졌다.
메이 총리가 정식으로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의견을 들은 건 사고 발생 사흘 후인 17일 오후였다. 면담 후 메이 총리는 “끔찍한 재앙이 발생한 직후 기본적인 도움이나 정보가 필요한 가족들을 위한 지원이 충분치 않았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제야 긴급기금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생존자들을 위한 새집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면담에 참석한 제야드 크레드 씨(29)는 “메이 총리는 우리의 삶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당신이 국가 운영을 하느라 바빠서 우리를 도우러 올 수 없다면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보내줘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번 화재 참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최악의 참사다. 이번 사고로 최소 58명이 사망하면서 1985년 브래드퍼드 축구장 화재 사고 당시 사망자(56명)를 넘어섰다. 경찰은 며칠째 실종자 신원도 파악하지 못한 채 사망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애매한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번 사고가 보수당이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나 건강 관련 복지를 줄이는 지나친 긴축정책 탓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지며 정권 교체 여론이 높아지자 보수당 내에서는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2014년 한국에서도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사고 이후 리더가 보여준 소극적인 자세, 희생자들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 행정 편의적 수습이 국민의 화를 키웠다. 그 후유증은 3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런던도 같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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