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뷰]‘지는 해’ 런던, ‘뜨는 해’ 파리… 유럽 금융패권의 이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8일 03시 00분


브렉시트로 ‘런던 엑소더스’ 현실화
20여 금융사, 파리와 법인 이동 논의… 런던서 일자리 1만개 유입 기대
英 기업투자 주춤-소비심리도 꽁꽁… 런던, 일자리 최대 10만개 유출 우려
마크롱, 국제이슈 주도 리더십 과시… 메이, 테러-총선 패배로 힘 빠져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취임 후 처음 파리를 방문한 지난달 13일 저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을 지켜봤다. 평가전이지만 자존심이 걸린 한판에서 잉글랜드는 2 대 3으로 패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경기 이후 “재능으로 무장한 프랑스의 젊고 새로운 세대에 비해 잉글랜드는 한없이 연약하고 늙어 보였다”며 완패라고 평가했다. 축구 관전평이었지만 마치 지금 런던과 파리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한 평가다.

1년 전 젊은 세대들이 반대했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현실화되면서 드리워지기 시작한 먹구름은 런던 하늘을 뒤덮을 태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 “런던의 금융을 가져오려는 ‘사악한 프랑스 음모(sinister France plot)’가 이제 놀랍지도 않은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기관인 HSBC의 스튜어트 걸리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마크롱 취임 이후 파리로 은행을 옮기는 건 매우 긍정적인 일이 될 것”이라며 런던에 있던 일자리 1000개를 파리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JP모건도 런던 직원 4000명 이상을 파리를 포함해 유럽 대륙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20개 이상의 금융업체가 파리와 법인 이동을 논의 중이다. 파리는 런던 금융가 일자리 1만 개를 가져올 걸로 기대하고 있다.

프랑스는 EU 국가 한 곳에 회사를 설립하면 자동적으로 나머지 27개국 회원국에 지부 설립 없이 각종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파이낸셜 패스포트’ 권한을 영국이 상실하는 틈새를 노리고 있다.

게다가 때마침 들어선 마크롱 정부의 구애는 마카롱처럼 달콤하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4일 “파리를 유럽 최고의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며 근로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 없애고 부유세에 외국 재산은 빼주는 등 런던 고액 연봉 금융가들을 향한 청사진을 밝혔다. 파리 외곽 지역인 일드프랑스 발레리 페크레스 도지사는 “런던 은행에 레드카펫이 아닌 프랑스 삼색기인 빨간-하양-파랑 카펫을 깔아주겠다”고 유혹할 정도다.

반면 런던은 EU와 단일시장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7만개에서 최대 10만개가 빠져나갈 것이라는 컨설팅그룹 PWC의 우울한 전망이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자 마음이 급해졌다.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은 17일 시작되는 EU와의 2차 브렉시트 협상을 앞두고 BBC에 출연해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영국에 투자가 중단될 조짐이 있다”고 고백했다. 영국 재무부는 최근 영국 기업 42%가 브렉시트로 투자 계획이 차질을 빚었다고 밝힌 영국산업협회의 조사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런던 금융특구인 시티오브런던의 제러미 브라운 EU 주재 대표는 최근 “EU 국가 중 유독 프랑스가 영국이 EU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영국이 보는 피해에 즐거워하고 있다”는 서한을 영국 재무부와 하원의원에 전달했다.

뒤바뀐 분위기는 경제 분야뿐만이 아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두 달 만에 러시아, 미국, 이스라엘 정상들을 파리로 잇달아 초대해 국제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과 대서양 동맹인 영국은 아직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초대하지 못했다. 메이 총리가 트럼프 입국을 반대하는 야당을 설득시킬 힘이 없기 때문이다. 2015년과 2016년 프랑스를 강타했던 테러도 올해는 런던에서 빈발하면서 이래저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파리#런던#브렉시트#테리사 메이#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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