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뷰]천민출신 배려 ‘긍정적 차별 정책’ 효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4일 03시 00분


출신 차별 심한 인도에 ‘불가촉천민 대통령’ 탄생… 어떻게 가능했나

이세형 기자
이세형 기자
인도 영화 ‘세 얼간이’(2011년 개봉)를 기억하십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세 명의 주인공이 온갖 노력 끝에 각각 자신들이 원하던 분야에서 성공을 이뤄내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허구지만 재미있고, 감동적인 ‘인도판 자수성가형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 전 세계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 달리트에 대한 ‘긍정적 차별’

20일(현지 시간)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세계가 주목할 만한 인도판 자수성가형 인물이 탄생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람 나트 코빈드(72)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인도 최하층 카스트 계급, 좀 더 정확히는 카스트 계급에도 제대로 못 들어가는 ‘달리트(불가촉천민)’ 출신입니다. 1997년 대통령을 지낸 코체릴 라만 나라야난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탄생한 인도 역사상 두 번째 달리트 출신 대통령입니다.

국내외 언론들은 그의 정책이나 정치적 성향 못지않게 달리트 출신이란 데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카스트 제도가 뿌리 깊은 인도에서 어떻게 달리트 출신 대통령이 배출될 수 있었을까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인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긍정적 차별(positive discrimination)’ 정책이 꼽힙니다. 달리트 출신들에 대한 다양한 사회 우대 정책을 의미합니다. 인도 정부는 다른 계급 출신에 대해서는 대학 진학, 공무원 임용, 공공기관 채용 등에서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달리트에 대해서는 인구비율(15%·약 1억9000만 명)만큼 채용하도록 제도를 마련해 운용해 오고 있습니다.

정채성 한국외국어대 인도학과 강사는 “인도는 다른 카스트 계급은 공식적으로 인구비율을 집계하지 않지만, 달리트 출신은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있다”며 “워낙 경제·사회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인 달리트 출신이 많아 국가가 사회 진출을 최대한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방의회와 주의회 같은 주요 선출직에도 달리트 출신을 15% 정도 뽑도록 하는 원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구에서는 달리트 출신이 지속적으로 당선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코빈드 역시 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했고, 두 차례 상원의원을 지냈습니다. 또 비하르 주지사로도 활동했습니다. 우대 정책의 혜택을 입은 겁니다.

이렇게 주류사회에 진출한 코빈드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가난한 사람과 여성들을 위한 무료 변론을 자주 펼쳐 명성을 얻었습니다. 주지사 시절에는 자격이 없는 교사들을 임용·승진시키는 문제와 무분별한 기금 운용 등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해 국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연방 상·하원 의원과 주의회 의원들이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 겁니다.

○ 여전히 심각한 소수계 차별 문제

인도에서는 총리가 실권을 쥐고 대통령은 비교적 상징적인 자리라는 점도 코빈드 당선의 한 원인입니다. 대통령도 군 통수권, 사면권, 법률안 거부권 등의 권한이 있지만 전반적인 영향력은 총리를 능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총리는 상층 카스트 계급의 정통 힌두교도가 맡지만, 대통령은 민심 안정 차원에서 소수계를 배려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습니다. 인도 전체 인구의 약 14%를 차지하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 같은 힌두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정권하에서 탄압을 받아온 무슬림들도 대통령을 여럿 배출했습니다. 반면 역대 인도 총리 중 비힌두교도는 만모한 싱 전 총리(시크교)뿐이었습니다.

달리트에 대한 우대 정책에도 인도는 여전히 소수계에 대한 차별이 심한 나라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무슬림과 기독교도 등 20%의 비힌두교 출신에 대해서는 특별한 우대 정책이 없습니다. 달리트나 무슬림 출신이 대통령 같은 최고위직에 올랐다는 소식에서 나아가 인도가 다양한 소수계의 생활 속 인권 보장을 위해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인도#세 얼간이#불가촉천민#대통령#카스트#달리트#람 나트 코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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