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오후 9시 24분,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호텔 월드’의 택시승강장 옆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일본 노래가 들려왔다. 화려한 무대복 차림의 10대 소녀 6명이 부르는 노래였다.
짧은 노래가 끝나자 이들은 옆으로 나란히 서서 젊은 여성 한 명에게 거의 90도 가깝게 머리를 숙였다.
혼자서 특별한 감사를 받은 사람은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이송 씨(28)였다.
“신촌이나 코엑스 등을 함께 다니면서 리허설 등을 도와준데 대해 고마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 씨와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 대기하고 있던 중형버스를 타고 숙소인 서초동으로 떠났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날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의 코엑스 D홀에서 열린 ‘제13회 한일축제한마당’에 참가한 일본의 지역 아이돌그룹 ‘미치노쿠 센다이 ORI☆히메타이’였다. 이들은 이날 저녁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일본 공연팀을 위한 리셉션에 참석했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미치노쿠’로 시작하는 긴 이름은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미치노쿠(陸奧)’는 센다이(仙台)시가 현청 소재지인 미야기(宮城) 현의 옛 이름이다. 우리로 치면 서라벌, 달구벌, 미추홀 같은 이름이다. ‘ORI☆히메’는 ‘오리히메’, 곧 ‘직희(織姬)’를 뜻하는데, ‘견우와 직녀’ 설화에 나오는 ‘직녀(織女)’를 말한다. ‘타이’는 대(隊)다. 그러니 그룹 이름을 풀이하자면 ‘미치노쿠 센다이의 직녀대’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서라벌 경주의 직녀대’, ‘미추홀 인천의 직녀대’ 쯤이 될 것 같다(일본어 ‘히메’는 그냥 여자보다는 지체가 높은 아가씨나 애기 씨, 때에 따라서는 공주를 뜻하기도 한다. 이하 ‘오리히메’로 부르기로 하자).
일본은 한국과 달리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이 꽤 있다. ‘오리히메’도 그중의 하나다. 이번 축제에 참가한 10개 팀 이상의 일본팀 중에서 유독 ‘오리히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 이 그룹이 2011년 3월 11일 도호쿠(東北)지방에서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의 상처 치유 활동을 목표로 결성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隊)’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다. 그리고 멤버는 모두 10대 소녀다.
센다이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로, 도호쿠 지방(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야마가타, 후쿠시마, 미야기 현)에서 가장 크다. 그래서 오리히메 같은 지역 아이돌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그룹의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써 있다.
“미치노쿠 센다이 오리히메타이는 2011년 7월에 미야기 현내 피해지역의 초중고생이 모여서 복구지원을 위해 만든 자원봉사 아이돌그룹입니다. 피해지역 복구를 위한 도움, 가설주택 위문, 복구주택 응원 등 의연금이나 물자와 함께 웃는 얼굴과 용기를 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끝없이 고향을 사랑하고, 도호쿠지방의 홍보와 활기를 짊어진 리더 성격의 여학생 집단입니다.”
그래 그런지 이들은 이날 본 공연에서도 두 번째 곡은 복구를 지원하는 내용의 ‘하늘이 파랗다’를 불렀고, 세 번째 곡은 복구를 기원하는 춤을 출 때 부르는 ‘복이 사는 마을-福住타령’을 열창했다(오리히메는 이날 관객들에게 ‘福住타령’을 인쇄한 부채를 많이 나눠줬다). 다음 노래는 아리랑, 마지막은 ‘웰컴 투 재팬’이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때 일본을 많이 방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의젓한’ 일을 하는 이들의 나이는 13세부터 17세로 아직 어리다. 그래서 내가 농담 삼아 말했다.
“어린 여러분들이 고향과 일본을 몽땅 책임지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내 일본어가 서툴러서였는지 그들은 웃지 않았다. 어리긴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해 와서인지도 모르겠고….
멤버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리더역할을 맡고 있는 노도카 양(17·2011년 7월 가입)을 비롯해 에린(17·2011년 9월), 소라(15·2012년 5월), 가렌(14·2012 5월), 미호(13·2015년 5월), 세이카 양(13·2015년 10월 가입) 등 6명.
24일 오후 본 공연을 끝내고 숨을 돌리고 있는 멤버들을 만나봤다.
가장 궁금하다며 물어본 게 있다.
“공부는 언제 하나.”
노도카 양이 답했다(노도카 양은 6년 넘게 리더 역할을 해서인지 어리지만 맏언니 냄새가 물씬 풍겼다).
“우리팀은 공부와 활동의 양립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멤버들끼리도 서로 도와주지만, 학교에서도 많이 지원해준다.”
“지금처럼 한국에 왔을 때는 어떻게 하나”라고 다시 물어봤다.
그는 “미리 사정을 얘기하고 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 일본 학교는 예체능활동으로 학교를 빠져도 모두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듯한 인상을 받기 쉽다. 그렇지 않다. 일본의 학부모나 학교는 예체능활동을 하더라도 학업과 병행하는 것을 선호하며, 우리처럼 예체능활동에 올인하지도 않는 경우는 드물다. 본인은 힘이 들지만, 세월이 흐르면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다.
오리히메는 몇 살이 되면 그룹을 떠나야 한다는 ‘졸업제’는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원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그동안 9명이 떠났다). 또 곧바로 빈자리를 보충하기 위해 현재 6살부터 10살까지의 주니어 멤버를 기르고 있다.
멤버가 된 계기를 물어봤다.
에린 양이 답했다.
“원래 연예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대지진이 발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차를 타고 피해지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오리히메를 통해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
가렌 양도 말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과 활력을 주고 싶었다. 이 팀에 들어오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더니 ‘네가 하고 싶으면 응원하겠다’고 지지해주셨다.”
사명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젊어서일까. 오리히메는 한일축제한마당에서 가장 부지런한 팀이었다. 본 무대뿐만이 아니라 자기 부스에서 3번이나 미니 공연을 펼쳤고, 한일광장에서도 또 한 차례 열심히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한일광장 공연이 끝난 뒤에는 자신들의 CD를 사준 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팬서비스 활동도 벌였다. 어린 학생들이 열심히 공연하는 모습은 현장에서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광팬’이 몇 명 눈에 띈 것이 인상적이었다.
오리히메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면서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오리히메의 크레도(Credo·신조) 5개조’와 ‘평소의 마음가짐 5개조’라는 것이었다.
신조 5개조는 모든 것에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약자를 도울 것, 웃는 얼굴로 언제나 명랑쾌활 할 것,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지성과 교양을 지닐 것,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행동거지를 아름답고 기품 있게 할 것, 일본 도호쿠 미야기 현 센다이를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국제인이 될 것 등이다.
평소의 마음가짐 5개조는 윗사람을 공경하고 부모를 소중히 할 것,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 인사는 진심을 담아서 할 것, 남의 험담을 하지 않고 남의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할 것, 솔직한 마음으로 어떤 일에든 겸허할 것.
조금 길지만 모두 인용한 것은 이것이 종교인이 아니라 아이돌의 신조라는 것이 신기해서다.
이것을 실천하고 있는지와는 별도로 오리히메가 그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오리히메 숙(塾)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댄스, 보이스, MC, 워킹 교육 외에 일본어와 외국어, 지리, 역사, 방재·환경, 경제, 도덕 등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도 역시 또래의 여자 아이들과 다를 게 없다.
한국에 와서 무엇을 샀는지를 묻자 팩이나 아이섀도 등 화장품이 많았다.
“한국인들의 피부가 좋아서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효과가 있을 것 같나)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국의 아이돌 빅뱅과 야키니쿠(삼겹살), 화장품은 이들에게 한국을 사랑하는 ‘3점세트’ 였다.
이들에게는 소망이 있다.
“세계에서는 아직 테러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곁에는 이지메도 있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소라).
“오리히메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팀이 되고, 나는 그 팀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 지금도 노래를 부르지만 노래 쪽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미호).
한국 공연은 해외 공연으로는 일곱 번째. 그동안 베트남, 프랑스, 중국, 타이완, 태국, 카타르를 다녀왔다. 이들이 이번에 한국에 오는 데는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오리히메 전체의 꿈은 세이카 양이 말해줬다.
“언젠가는 미국 워싱턴의 스퀘어 가든 무대에 서고 싶다.”
그들은 “한국에서 오리히메의 단독 콘서트를 갖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리히메는 아직 젊다. 아니 어리다. 그러니 어떤 꿈이든 꿀 수 있다.
오리히메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무라타 요시에(村田淑惠) 대표는 말한다.
“아이들이 예전부터 한국에 오고 싶어 했다. 그 꿈을 실현하는데 6년 넘게 걸렸다. 이번에 와보고 너무 좋아한다. 센다이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로 2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다음에 다시 오자고 성화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사회의 어른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한일축제한마당을 꾸준히 보아오면서 확실하게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한일간의 벽이 무너지고, 공연간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컬래버레이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선도하는 것이 젊은이들이다. 오리히메도 그 중의 하나다. 이번에 열심히 아리랑을 배워 한국인 관객에게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그렇다.
오리히메의 앞날을 전망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오리히메가 비록 동일본대지진의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결성됐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10대의 젊은이로, 그저 20대의 뜨거움으로 노래를 부르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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