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독립운동가들은 바르고 보수적이어서 대체로 틀에 박힌 글씨체를 쓴다. 그런데 천도교 교주 손병희, 불교 승려 한용운 등 종교인들은 그 예외로서 특이한 글씨를 쓴다. 아무래도 정신세계가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독특한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 2대 교주 김교헌, 신자 이유립 장도빈 조완구 안희제 등은 정사각형 형태로 뱀이 기어가는 듯한 독특한 필체를 보인다.
나철의 글씨는 상하좌우 완벽한 균형미를 갖춘 정사각형이 웅장한 기운을 뽐낸다. 당나라의 유공권은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다”라고 했다. 정사각형 글씨를 쓰는 사람들은 보통 융통성이 없거나 추진력이 부족하거나 소심하다는 약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철은 ‘입 구(口)’ 등의 큰 글씨, 획의 리드미컬한 변화,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 이런 약점을 충분히 극복한다. 뱀이 꿈틀대는 듯한 곡선은 온화함, 사랑, 감성 등을 뜻한다. 그런데 곳곳에 보이는 규각을 보면 원칙을 중시하고 고집이 있으며 단정하고 올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종교는 민족종교이자 거대한 항일운동 단체였다. 일제가 대종교 해체를 명하자 그는 죽음을 택한 이유를 밝힌 유서를 남기고 폐기법(閉氣法)으로 숨을 끊었다. 그의 삶과 죽음은 모두 민족을 위한 결단으로서 도덕 그 자체였고 꿈이었다.
나철의 글씨는 글자 간격은 좁은 반면에 행의 간격은 충분히 넓다. 필적학에서 글자의 간격은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거리를 뜻한다. 내성적이고 고지식하며 자의식이 강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자기표현에 엄격한 사람들은 주로 좁은 글자 간격을 유지한다. 벤저민 프랭클린, 에이브러햄 링컨, 프란츠 카프카도 그렇다. 넓은 행의 간격은 조심스럽고 사려 깊으며 절약하는 습성을 말해준다. 나철은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남에게는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치를 추구하는 품성까지 갖추었으니 종교를 창건한 지도자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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