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인이 남긴 광개토대왕비(414년)는 한민족의 대표적인 글씨이다. 높이 6.3m, 폭 1.5m, 무게 37t으로 위풍당당하다. 광개토대왕비는 한민족 고유의 글씨체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규칙성보다는 불규칙성이 더 눈에 띄고 때로는 자유분방하기도 하다. 각이 있으면서도 가파르지 않고 넉넉하며 부드러운 곡선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글자 형태는 정방형, 직방형, 사다리꼴, 마름모꼴 등 다양하다. 어떤 것은 위쪽이 크고 아래쪽이 작은데 그 반대의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왼쪽이 오른쪽보다 큰데 또 그 반대의 것도 있다. 점획의 처리가 단순하게 되어 있으며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여 단순미를 느끼게 한다. 점과 직선으로만 이루어졌지만 그 직선과 점을 다양하게 운용하여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광개토대왕비와 전체적인 서풍이 같은 것으로 ‘광개토대왕호우명(廣開土大王壺우銘)’, ‘계해년’ 인장(423년 추정), ‘중원고구려비’(5세기 중반)가 있는데 이들은 공식적인 글씨체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민(民)의 성향을 잘 살필 수 있는 것은 ‘안악3호분묵서’, ‘덕흥리고분묵서(德興里古墳墨書)’, ‘모두루묘지명(牟頭婁墓誌銘)’(4∼5세기), ‘평양석각석(平壤石刻石)’(5∼6세기), ‘연가칠년(延嘉七年)’이 새겨진 금동여래입상과 같이 비공식적인 생활서체이다. 공식적인 글씨체와 ‘민’의 글씨체들을 전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고대 한민족이 활력이 있고 급하며 자유분방하고 깨끗하며 순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백제, 신라도 마찬가지이다.
차이점도 있다. 고구려인의 글씨체는 신라나 백제와 비교해서 선이 힘차고 활달하지만 거칠고 엉성하다. 획의 굵기와 길이의 변화가 있고 위아래로 다소 긴 특징을 보여준다. 선이 힘차고 활달하며 긴 글씨는 열정, 팽창 의욕, 적극성, 실천력, 진취적 기상을 의미하지만 순진하고 충동적이며 현실감각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획이 거칠고 엉성하며 변화가 심하다는 것은 행동이 안정되지 않고 예측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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