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총에서 나온 이사지왕(이斯智王) 고리자루 큰칼(5세기 중반∼6세기 초)은 한민족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글씨 중 하나이다. 글자의 크기, 형태나 기울기의 변화가 매우 심하다. 글자의 좌우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행이 반듯하지 않으며 중심선이 왼쪽 오른쪽으로 불규칙하게 세워져 있다. 글자 시작 부분에 여백이 유난히 좁은 데다가 글자가 기우뚱하고 들쭉날쭉하여 생명력을 고조시킨다.
포항중성리신라비(501년·보물 1758호), 영일냉수리신라비(443년 또는 503년·국보 264호), 울진봉평비(524년·국보 242호), 천전리서석(525년 및 539년), 영천청제비(536년·보물 517호)에서도 같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부정형의 구조를 하고 있고 필획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예측하기 어려워 원시적 생명력과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같은 글자라도 다른 형태를 추구하였고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구성됐다. 일반적으로 비석에 새긴 글씨는 표준적이며 정규적이고 엄격한 법도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비석들의 자유분방함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고구려, 백제와 비교할 때 신라 글씨의 특징은 간결하고 짤막한 글씨가 많고 획마다 굵기의 차이가 크지 않으며 직선체가 상대적으로 많고 글자의 형태, 크기, 방향 등이 좀 더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글자 시작 부분에 여백이 없고 원필보다는 방필을 많이 사용하여 강건한 맛이 난다. 직선체의 글씨는 부드러움보다는 공격적이고 강인하며 꼼꼼하고 융통성이 없으며 규정을 잘 지킨다는 것을 뜻한다. 글씨가 간결하고 짤막하다는 것은 현실감각이 있고 절제를 할 줄 알며 일에 집중하고 냉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라인들은 활력, 정열, 적극성, 자신감 등이 넘쳤을 것이다. 이 힘이 한구석의 작은 나라로 하여금 동방에 있는 통일정권의 최초 건설자가 되는 영광을 갖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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