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 등 3명의 특사를 파견한다.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주권 회복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특사로 파견된 이준은 우리나라 최초의 검사이다. 고종은 선생의 법률 지식과 정의감을 높게 사서 특사로 낙점했다. 그러나 일본 대표 고무라 주타로의 방해 공작으로 헤이그 특사 사건은 무산되고 만다. 이준은 헤이그의 한 호텔에서 끓어오르는 분을 이기지 못해 병사한다.
이준의 글씨는 강직함과 소박함이 어우러져 있다. 정확하게 정사각형을 이루고 균형이 잡혀 있는 데다 각이 지고 힘이 넘쳐서 올곧은 인물임을 알려준다. 강직한 기개, 웅혼한 기운이 글씨 전체에서 풍겨 나온다. 획의 시작 부분에 비틀림이 없고 필획이 깨끗한 것을 보면 순수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한일의정서 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대한협동회 부회장으로서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를 강하게 반대했으며, 반일진회 투쟁을 전개하다가 황해도 철도(鐵島)에 6개월간 유배당하기도 했다.
‘田(밭전)’, ‘白(흰백)’, ‘石(돌석)’에서 볼 수 있듯이 아랫부분이 윗부분보다 많이 작다. 이런 글씨를 쓰는 사람은 뭔가 다른 사람과 다른 관점이 있어 예술적 센스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 편향될 수 있고 일을 처리할 때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안정 지향적이고 성취력이 있는 사람의 글씨는 이와 반대로 아랫부분이 더 크다. 선생이 한성재판소 검사보로 대관중신들의 비행과 불법을 들추어내다가 탐관오리들의 중상모략으로 1개월 만에 그만두게 된 것이나, 평리원 검사 시절 고종의 사면령에 의거해 당시 을사오적을 처단하려던 기산도 등을 사면자 명단에 올렸다가 이를 반대하는 상관과 마찰을 빚어 8개월 만에 파면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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