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은 나라를 빼앗기자 중국에 망명해 독립운동을 하면서 태백광노(太白狂奴)라는 호를 사용했다. ‘슬퍼하며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노예’라는 뜻이다. 선생이 쓴 ‘한국통사(韓國痛史)’의 제목에서 ‘통할 통(通)’이 아닌 ‘아플 통(痛)’을 사용한 것만 보아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혼이 보존되면 국가는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던 선생에게 한국사 연구와 저술은 곧 독립운동이었다.
그의 필체는 매우 날카로워서 손을 베일 것 같은 느낌이다. 또 글자의 구성 부분 사이에 틈이 좁고 글자의 간격도 좁다. 이런 필체를 가진 사람들은 자존심이 세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으며 예민하고 완벽주의자여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며 피곤하게 산다. 그 대신 이들이 해내는 일의 수준은 높을 수밖에 없다. 선생은 바람 잘 날 없는 독립운동 전선에서 역사책을 저술했다고 하는데 책의 내용이나 문장의 수준이 매우 높다. 청나라의 학자 캉유웨이는 “절개가 높고 학문이 풍부하며 문장의 필체가 뛰어나고 필력이 웅건하며 세찼다”고 평가했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릴 정도로 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에 능하기도 했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행의 간격이 매우 넓어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성향이었을 것이다. 송상도가 쓴 ‘기려수필’에 의하면, 선생의 인상은 중키에 광대뼈가 튀어 나왔으며 항상 미소 짓는 얼굴에 관후하고 소탈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작은 글씨는 현실적인 감각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선생은 국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황성신문 등의 주필로서 애국적 논설을 써서 민중 계몽에 나섰고 서북협성학교와 오성학교 교장으로 민족 교육에 앞장섰다. 삐침이 강하고 꺾임 부분에 모가 나고 필획이 곧은 선생의 필체는 “백 번 꺾어도 꺾이지 않고, 열 번 밟혀도 일어나면 최후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선생의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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