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키의 글씨들이 정사각형을 이뤄서 올바르며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냉정했음을 알 수 있다. 심산은 “성현이 세상을 구제한 뜻을 모르면 가짜 선비다”라고 말했고 유학 경서를 읽고 거들먹거리는 선비가 아니라 시대악과 처절하게 맞서 싸운 ‘칼을 든 선비’의 길을 갔다. 심산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대궐 앞에서 을사오적의 목을 벨 것을 상소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문 닫고 글만 읽을 때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국채보상운동과 국력자강운동에 뛰어들었고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했다. 정돈성과 규칙성이 두드러지는 것을 보면 말과 행동이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말년에 집 한 채 없이 여관이나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병상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지만 심산은 외롭지 않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