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2일, 제71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레드카펫 위에서 ‘성평등 촉구 행진’이 벌어졌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을 비롯해 아녜스 바르다 감독, 배우 레아 세두,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리옹 코티야르 등 여성 영화인 82명이 함께했다.
케이트 블란쳇은 “여성은 이 세상에서 소수자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산업의 현재 상황은 다르다. 우리의 결단과 진보하겠다는 약속의 상징으로 오늘 이 계단에 함께 섰다”라고 말했다.
82라는 숫자의 의미는 ‘82 대 1688’, 즉 1946년 칸 영화제가 시작된 이후 71년 동안 남성 감독은 1688명이 레드카펫을 걸었고 여성 감독은 82명만이 초청됐을 뿐이라는 것을 ‘행진’으로 증명한 것이다. 남녀 비율로 치면 20 대 1이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인데, 이 기울어지고 편향된 비율은 곧 ‘칸의 보수성’을 증명한다. 71년 칸 역사에서 여성 감독이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건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활동한 제인 캠피언이 유일하다. 1993년 그가 만든 ‘피아노’는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와 공동 수상했다. 그마저 출산 때문에 직접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데뷔작부터 줄곧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제인 캠피언의 영화는 ‘스위티’나 ‘내 책상 위의 천사’를 거쳐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인 1993년 ‘피아노’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다.
서울 도심의 한 극장에서 ‘피아노’를 관람했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여섯 살 때부터 ‘스스로’ 침묵하게 된 에이다와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창구인 딸 플로라와 피아노. 유려한 카메라 워킹과 뉴질랜드의 황량한 바다와 정글의 이미지, 마이클 나이먼의 아름다운 음악이 어우러져 19세기 여성이 자신의 욕망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격정적으로 그려냈다.
그때 갓 서른이 넘은 젊은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 여성 감독이 그리는 남녀 간 성애 장면이 무엇보다 남다르게 다가왔다. 자신의 욕망을 좇아 달려가는 에이다의 한껏 부풀어진 치마 끝자락을 잡고 매달리는 남편 스튜어트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남성이 아닌 여성 감독의 시선과 시각이 주는 장면화의 차별점이 그때 내게 각별하게 다가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중단한 에이다 역 홀리 헌터의 고집스럽고도 창백한 얼굴, 그녀의 사생아 플로라 역을 소화한 애나 패퀸의 연기도 매혹적이고, 극단적으로 상징화된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남편 스튜어트 역의 샘 닐과 원시적 남성성을 유지한 채 그녀를 사랑한 베인스 역의 하비 카이텔도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친다.
침묵을 버리고 말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에이다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 이 영화는 19세기를 살았던 고요하고 내밀한 한 여성의 심연에 뜨거운 생의 자유의지가 있음을 탁월하게 구현한다.
71년간 단 한 명의 여성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수여한 바 있는 칸 국제영화제 현장에서 여성 영화인 ‘82명’이 ‘성평등 촉구 행진’을 벌이는 퍼포먼스를 지켜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25년 전 제인 캠피언의 ‘피아노’가 떠올랐다. 여성은 세상의 소수자가 아니다. 그러나 영화산업 속 여성은 소수자이다. 한국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이 땅의 여성 영화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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