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국제영화제에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만비키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기뻤다. ‘만비키 가족’이 ‘어느 가족’이란 한국 제목을 달고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네 번째 장편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다시 보았다. 고레에다 감독님! 당신의 신작을 보기 전 예전 영화까지 복습하며 기다리는 팬이 여기 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를 다시 꺼내 본 건 이야기 출발점의 유사성 때문이다. 부모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연금을 부정하게 받아 생활하던 한 가족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만비키 가족’이나 1988년 도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아무도 모른다’는 동시대의 사회현상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일상과 가족의 모습을 통해 삶과 사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과잉 연민이나 폭로와 분노 대신,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아픔과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아 끝내 관객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드는 그의 영화는 감독의 가치관이다.
“소년의 곁에서 어깨를 다독여주고자 했다. 안아주는 건 안 된다. 포옹은 너무 친밀하다. 나도 카메라도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소년과 같은 것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아무도 모른다’를 연출했을 당시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 사건은 참혹하지만 영화는 개구쟁이 아이들의 얼굴처럼 내내 따뜻하다. 아버지가 모두 다르고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으며 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네 명의 아이와 철없는 엄마는 먼저 살던 집에서 쫓겨나 새집으로 이사한다. 집을 얻기 위해 주인에게 아들과 둘만 산다고 거짓말을 한 터라 작은 두 명의 아이는 트렁크에 넣어 몰래 들여온다. 오래 트렁크 안에 숨어 있던 셋째 시게루가 트렁크 문이 열리자 혀를 쏙 내밀며 천진하게 웃는 바람에 관객은 이 말도 안 되는 처참한 상황을 일상인 듯 잠시 잊는다. “사랑하는 남자가 또 생겼다”는 엄마의 말에 첫째 아키라는 대답 대신 햇빛이 내리쬐는 베란다에 널려 있는 이불에 뺨을 댄다.
크리스마스엔 돌아오겠다며 집을 나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아이들의 옷과 운동화는 점점 더러워지고 머리는 덥수룩해진다. 결국 끝내 돌아오지 않는 엄마는 아키라에게 “너만 믿는다”는 짧은 편지와 함께 돈을 보내곤 끝. 그리고 이 사남매의 비극도 끝을 향해 나아간다.
그곳에 살았지만 살지 않았던, 또는 그곳에 있었지만 그곳에 없었던 아이들의 존재는 비극 그 자체이다. 그러나 아키라와 동생들은 비극 속에서 꿋꿋하게 성장한다. 감독은 도쿄의 밤거리를 홀로 달리는, 또는 텅 빈 거리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연락 없는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아키라의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도쿄라는 대도시 속 버려지고 남겨진 아이의 슬픔을 지독할 정도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로 데뷔한 아키라 역의 야기라 유야는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살아남아 밝은 한낮의 거리로 나서는 아키라와 아이들의 뒷모습이다. 개구쟁이 시게루가 화면을 바라보는 나를 슬쩍 돌아본다. 다시 또 이 영화를 꺼내 본 후 나는 새삼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인사했다. “우물처럼 깊은 눈의 아키라, 귀여운 시게루, 착한 교쿄, 다들 잘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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