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적 전망과 냉소가 넘치는 시대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인들의 이야기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영화 ‘스포트라이트’(톰 매카시 감독)는 묵혀 있는 사건을 다시 꺼내 집중 취재하는 기자들의 이야기이다. 미국 유력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지에 새로 부임한 편집국장 마티는 부임 첫날부터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 가톨릭 사제에 관한 주제를 회의 테이블에 꺼낸다. 지오건이란 신부가 지난 몇 년간 교구를 옮겨 다니며 여러 아동을 성추행했고 추기경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문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스포트라이트 팀이 다뤄줄 것을 요청한다.
의례상 만난 추기경이 도움을 주겠다는 회유에 편집국장 마티는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가 정석 플레이로 직진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대사이다. 팀장을 비롯한 4명의 기자가 피해자들을 수소문해 만나고 변호사를 집요하게 몰아붙여 과거에 합의한 사실을 밝혀내고 회의를 거듭하는 시간들 모두가 흥미진진하며 박진감이 넘친다.
전문직을 다룬 드라마답게 신문사 풍경과 자료실, 그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과 셔츠까지 자연스럽다. 거대한 시스템의 추악함을 밝혀내느라 고군분투하는 이 열혈 주인공들 곁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족이나 떨어져 지내는 아내가 있다. 영화는 이 주인공들 역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먹잇감으로 노리고 성폭력을 가하는 비열한 어른들과 범죄자들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서늘한 감정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절대 악의 폭력을 전시함으로써 쉽게 획득하는 관객의 몰입을 현명하게 피하고 촘촘한 플롯과 대사들로 승부하는 시나리오와 연출이 압권이다. 권력형 성범죄의 폭로성 기사에 급급하지 않고 위협과 위험의 물리적 시간을 견디면서 시스템을 뒤흔들 만한 한 방을 준비하는 이들의 협업이 가져오는 마지막 장면은 어떤 해피 엔딩보다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성추행 피해자들의 제보가 빗발치는 마지막 장면과 주인공들이 끝끝내 찾아낸 가해자들의 이름이 오르는 엔딩 크레디트의 묵직한 울림이 대단하다. 실제로 10여 년간 벌어진 아동 성추행 사건을 파헤친 주인공들인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몇 년 전 이 사건을 간과한 책임에 대해 자책하자 “우린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요. 갑자기 불을 켜면 탓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죠”라는 편집국장의 말이나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라는 변호사의 말은 오래 기억에 남는 명대사이자 이 영화의 세계관이다. “이걸 밝히지 않으면 그게 언론인입니까?”라고 되묻는 마이크 기자(마크 러펄로)의 질문은 너무 뻔한 상투어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간과하고 사는 질문이기도 하다.
언론인들을 다룬 영화들 중에서도 빼어난 완성도의 이 수작은 2016년 아카데미 영화상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편집국장 마티 역의 리에브 슈라이버를 비롯해 마크 러펄로, 레이철 매캐덤스, 마이클 키턴, 스탠리 투치 등 할리우드의 명연기자들은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아닌 절묘한 호흡으로 수작의 완성도를 견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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