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 내내 휠체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배우 대니얼 데이루이스를 이야기하려고 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나는 치아 미백을 위해 팔자 좋게 치과병원 의자에 앉아 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투명 플라스틱을 끼운 채 약물을 바르고 한 시간을 꼼짝없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절대로 몸을 움직이면 안 되는 1시간을 버텨 내는 게 몹시 힘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몇 년 동안 꼼짝없이 누워만 있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의식은 밤하늘의 별처럼 말똥말똥 반짝이는데 사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육체의 감옥에 갇힌 정신. 멀쩡한 정신으로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기분이 이런 건가.
침대에 누워만 지내야 하는 지경이 되기 전, 휠체어에 엄마를 앉혀 산책을 했던 어느 날의 기억이다. 보도와 차도 사이의 턱에 걸려 나는 휠체어 손잡이를 놓쳤고 엄마는 길바닥으로 쓰러졌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달려와 함께 엄마를 들어 올려 휠체어에 앉혔다. 투병으로 한없이 가벼워진 몸, 짐처럼 쓰러져 버린 육신이었다. 가늠은 하겠으나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이 이 세상엔 있다는 생각을 치과병원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생각했다.
2017년 60세 나이로 은퇴를 선언한 배우 대니얼 데이루이스는 메소드 연기의 장인이다. 뇌성마비의 몸으로 태어나 왼발 하나로 그림을 그렸던 크리스티 브라운의 삶을 다룬 짐 셰리든 감독의 영화 ‘나의 왼발’(사진)을 위해 촬영 기간 내내 휠체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스태프가 그에게 음식을 떠먹여 줬다. 데이루이스는 크리스티 브라운이란 인물을 알기 위해 그의 모교가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생활도 했다고 한다. 이 배우는 ‘갱스 오브 뉴욕’에서 도살자 빌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 푸줏간 실습생으로 일했다고 한다.
극 중 무책임한 아버지는 크리스티가 태어나자마자 요양원에 보낼 거냐고 묻는 이웃에게 “요양원에 가기 전에 관에 들어갈 거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헌신적인 어머니의 양육으로 크리스티는 왼발로 빼어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청년이 되자 여성을 사랑하지만, 그 결과는 거절과 모욕이다. 그는 “나는 정신적 사랑 말고 해본 적이 없어요. 빌어먹을 정신적 사랑”이라고 온몸을 뒤틀며 침을 흘리며 꾸역꾸역 간신히 소리친다. 크리스티는 결국 편견 없이 친구처럼 대하는 메리를 만나 사랑을 이룬다.
‘모든 게 허무해서 이제 끝내려 한다’며 자살까지 시도했던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메리와 함께 활짝 웃는다. 영화의 메시지는 장애를 극복한 감동 스토리가 아니라 인간 존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그렇게 이해하게 된 데는 전적으로 역할을 위해 진짜로 그 사람이 되어 보는, 육체와 정신을 다 갈아 넣은 듯한 대니얼 데이루이스의 명연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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