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 영화 100년을 기념한 프로그램 ‘백 년 동안의 한국 영화: 와일드 앳 하트’ 섹션에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상영했다. 제작자인 나도 18년 만에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버전을 전주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재확인하는 감회가 남달랐다. 이제는 연기파 스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황정민 박해일 류승범을 비롯해 이얼 오지혜 박원상의 젊은 얼굴도 새삼 반가웠다.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중엔 먼저 세상을 떠난 분도 있었다.
임순례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삼류 밴드 이야기이다. 거듭되는 불경기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출장밴드를 전전하는 성우(이얼)는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은 고향 수안보로 향한다. 밴드 멤버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 흩어지는 바람에 그 구멍을 메우느라 어렵게 모셔온 음악 스승도 지금은 알코올 중독으로 성우를 힘들게 한다. 급기야 1인 오부리(즉흥 반주) 밴드로 전락한 그가 중년 손님들의 강요로 옷을 홀딱 벗은 채 노래하며 연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지독하다. 애써 무감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단란주점 모니터 화면엔 성우의 꿈 많던 고교 시절, 친구들과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이 흐르고 중년이 된 성우의 알몸과 겹쳐진다. ‘음악이 그저 좋아서’ 한국 최고의 록 밴드를 꿈꿨던 꿈은 스러지고, 성우는 고단한 현실 속에 무기력하게 서 있을 뿐이다.
더 이상 고향에서도 버틸 재간이 없는 성우가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 인희(오지혜)에게 여수행을 제안하자 “바다 본 지도 오래됐다”며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따라나선다. 성우, 정석(박원상)과 함께 인희가 여수 어디쯤 나이트클럽 무대에 올라 스팽글이 반짝이는 드레스를 차려 입고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절절히 부르면 그들을 비추던 카메라는 서서히 뒤로 물러서고 영화도 끝이 난다. 임 감독의 영화는 어린 시절의 꿈이 이제는 고단한 현실이 되어버린 그 서글픔과 쓸쓸함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 더 쓰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본 후 쓴 소주가 간절하다고도 했다.
수안보의 허름한 술집에서 성우는 고교 시절 밴드를 함께했으나 이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수철(신현종)과 소주를 마신다. 수철은 “우리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음악 하고 사니까 행복하냐구. 진짜루 궁금해서 그래…. 행복하니?”라고 묻는다. 성우는 끝내 대답하지 못한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젊은 관객들 사이에 있던 어느 중년의 여성이 임 감독에게 다가와 18년 전 전주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았노라고 했다. 옆에 있던 20대 초반의 아들은 이번에 처음 영화를 봤는데 엄마만큼 좋게 봤다고 했다.
삶을 살아내고 견뎌내는 사람들도, 워라밸과 소확행의 가치가 소중한 사람들도, 그마저도 사치로 여길 고단한 사람들도 부디 행복하기를.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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