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은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김모 군이 서울 구의역에서 홀로 승강장 안전문을 고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지 3년 되는 날이었다. 청년의 무참한 죽음을 기리는 ‘너는 나다’라는 이름의 추모제를 보면서 20년 전 영화가 떠올랐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장피에르·뤼크 다르덴 형제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로제타’다.
열여덟 살 로제타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엄마와 도심에서 떨어진 캠핑장 트레일러에서 산다. 공장에서 해고당하고 일한 기간이 짧아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없다. 헌 옷을 주워 와 엄마가 수선하면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한다. 단 하나인 외출용 운동화와 장화로 버티는 나날이지만 그는 위험천만한 도로를 가로지르며 부지런히 일자리를 구하러 다닌다. 우연히 와플 가게에서 일하는 또래 청년 리케와 친구가 돼 거기서 일하지만 가게 사장의 아들이 퇴학을 당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뺏기고는 쫓겨난다. 만취해 집 앞에 널브러져 있는 엄마를 가까스로 침대에 눕히고 삶은 계란 한 알을 먹은 뒤 로제타는 자살할 마음으로 창문의 새는 틈들을 막고 가스통의 밸브를 열고 자리에 눕는다. 그러나 그에겐 자살도 쉽지 않다. 가스가 모자라서다.
영화는 새로 산 가스통을 힘겹게 들고 가다 쓰러져 울음을 터뜨리다 일어선 그의 얼굴에서 끝난다. 로제타가 원한 건 단지 정상적인 삶, 남들과 같은 집, 남들과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너 이름은 로제타” “내 이름은 로제타” “넌 일자리가 생겼어” “난 일자리가 생겼어” “넌 평범한 삶을 살 거야” “난 평범한 삶을 살 거야”라고 혼잣말을 되뇌던 그이므로 끝내 죽음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삶의 잔인함을 이토록 탁월하게 그려낸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가혹한 현실에 놓인 그를 동정하지 않는 영화의 시선은 서늘하다. 그의 삶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의 지각을 따라붙어 다니는 카메라는 영화의 주관을 경계한다. 이후 세계 젊은 영화인의 전범이 된 핸드헬드(손으로 들고 찍기)와 롱테이크(하나의 장면을 끊지 않고 길게 촬영하기)로 현실을 좇는 다르덴 형제 감독은 연출적 개입을 최대한 배제한 사실주의 기법으로 세상과 삶의 부조리함을 그려냈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2000년 벨기에 정부는 ‘로제타 플랜’을 도입한다. 강력한 청년실업자 의무고용 제도로 종업원 50명 이상의 사업장에서 고용 인원 3%에 해당하는 청년 노동자를 추가 고용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현실에 참여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는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다운 결과다.
영화 로제타와 로제타 플랜이 함께 이야기되는 세상과는 점점 멀어지는 이 땅의 현실 속에서 ‘너는 나다’라는 문장이 가슴을 서늘케 했다. 며칠 전 로제타는 20년 만에 한국에서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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