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스위스 대회를 시작으로 이번 대회 직전인 98년 프랑스대회까지 모두 5번의 대회에 출전했지만 14번의 본선 1회전 경기에서 단 1승도 못 거둔 채 4무10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스위스월드컵에서 한국은 첫경기 헝가리전에서 전반 4골을 내주더니 후반 들어 여독도 풀지 못한 선수들의 다리에 잇따라 쥐가 나 쓰러지면서 5골을 추가로 헌납했다. 0-9패. 이 점수는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 최대 점수차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한국은 이어 터키와의 2차전에서도 0-7로 완패, 최악의 월드컵 데뷔전을 마감했다.
스위스대회 이후 한동안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던 한국은 86년 멕시코대회 때 32년 만의 본선 진출을 달성했다. 허정무 최순호 김주성은 물론 독일 분데스리가의 영웅 차범근까지 앞세운 한국은 내심 ‘돌풍’을 기대했지만 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와 같은 조에 편성되는 최악의 대진운에 울어야 했다. 1무2패. 하지만 한국은 이 대회 3경기에서 불굴의 투혼으로 막판 추격을 거듭, 세계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은 이 대회 이탈리아전에서 박창선이 월드컵 사상 한국의 첫 골을 기록한 데 이어 불가리아전에서 김종부, 이탈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최순호 허정무가 골을 터뜨렸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한국은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했다. 다만 스페인전 전반 ‘캐넌 슈터’ 황보관이 25m짜리 빨래줄 슈팅을 작렬한 것이 당시 FIFA가 선정한 ‘가장 멋진 슛 베스트 5’에 올랐다.
이어 94년 미국월드컵. 한국은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2골을 먼저 내줬으나 종료 5분을 남기고 홍명보와 서정원이 잇따라 2골을 기록하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어 볼리비아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하석주가 1 대 1 찬스를 놓치는 바람에 첫승 찬스를 놓쳤고 마지막 독일전에서는 0-3으로 리드당하던 후반 황선홍 홍명보의 릴레이 추격골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2무1패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한국은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하석주가 전반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월드컵 사상 첫 선취골을 넣었지만 곧바로 퇴장당하는 바람에 수적 열세 속에 무너졌다. 이어 네덜란드전에서는 현 한국 대표팀 사령탑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 적장으로 나선 가운데 0-5 참패를 당했다. 그나마 한국은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이임생의 붕대 투혼 속에 유상철이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켜 침울했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2002한일월드컵. 히딩크 전 네덜란드대표팀 감독을 영입한 한국축구는 마침내 48년 만에 월드컵 첫 승의 꿈을 달성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부산〓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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