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경기장에 물 쏟고…골대에 소주 뿌리고

  • 입력 2002년 6월 5일 19시 52분


‘지성이면 감천이다’고 했던가.

한국이 월드컵 첫 승을 이루기까지 대한축구협회도 갖은 묘안을 동원해 ‘치성 드리기’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와의 경기 당일인 4일 정오부터 거스 히딩크 감독의 요청에 따라 그라운드에 폭포수처럼 물을 뿌린 대한축구협회는 오후 늦게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의 그라운드 배수 시설이 너무 완벽해 스프링클러를 총 가동했는데도 물 뿌린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히딩크 감독은 지난달 16일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 직후 바운드가 강한 마른 그라운드보다는 볼이 잘 미끄러지는 젖은 그라운드가 속도 축구로 무장한 한국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문에 경주 캠프지에서도 매일 하루 50t의 물을 지원받아 세부 전술을 가다듬어 왔던 터였다.

바짝 마른 그라운드를 두고 얼마나 물을 더 뿌려야 할지 숙의를 거듭하던 협회는 급히 연락이 닿은 잔디 전문위원으로부터 “부산 경기장은 오후 7시경이면 땅속에서 물이 다시 올라오니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따라 협회는 그라운드만 쳐다보며 기다렸으나 스탠드에 관중이 절반 이상 찼을 때까지도 별 반응이 없어 ‘작전 실패’가 아니냐며 조바심을 태웠다. 하지만 경기시작 한시간여 전. 거짓말처럼 그라운드가 물기를 잔뜩 머금기 시작했고 관계자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또 김형룡 협회 홍보부장은 이날 오후 일찌감치 그라운드에 금지 품목인 소주 8병을 반입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골대 한 개당 4개씩, 모두 8개의 골포스트에 각각 소주 한 병씩을 따르며 ‘골대 신(神)’의 은총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9월부터 단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첫 승을 향해 달려온 그는 “막상 ‘그 날’이 되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배경을 털어놨다.

‘골대 신’의 은총 덕인지, 젖은 그라운드 덕인지 아무튼 태극전사들은 이날 완벽한 경기로 치성에 보답했다.

수원〓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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