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아듀 '2002스포츠']<4>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악마

  • 입력 2002년 12월 22일 18시 49분


“대∼한민국.” 온통 붉은색으로 치장한채 거리를 메운 길거리 응원단이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축구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대∼한민국.” 온통 붉은색으로 치장한채 거리를 메운 길거리 응원단이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축구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한국-독일의 4강전이 열린 6월25일. 이날 하루 전국에서는 무려 700여만명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치며 하나가 돼 응원전을 펼쳤다.

세종로 네거리와 대학로, 경기가 열린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주변을 비롯해 서울에만 2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공원이나 둔치 등 넓은 광장이면 어디든지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붉은색 상의나 붉은 두건 차림. 거대한 붉은 물결이 전국을 뒤덮었다.

6월4일 한국-폴란드의 D조 첫 경기가 열릴 때만 해도 서울 세종로 네거리와 대학로를 중심으로 1000명 단위였던 길거리 응원단은 6월10일 한국-미국전 50만명, 6월14일 한국-포르투갈전 100만명, 6월18일 한국-이탈리아의 16강전 350만명, 6월22일 한국-스페인의 8강전 500만명 등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수백만명이 길거리에서 응원을 했지만 큰 사고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이들이 떠난 자리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그 질서정연한 모습에 세계가 놀랐을 정도다.

6월 한달 한반도를 붉게 물들였던 길거리 응원 문화는 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스로 출범한 ‘붉은 악마 응원단’이 모태. ‘붉은 악마’는 1995년 6월 국내 축구 서포터의 효시인 ‘유공 코끼리 프로축구팀 응원단’에서 출발했다.

축구대표팀 응원을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은 97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 때부터. 붉은 악마란 공식 명칭도 그해 8월에 확정됐다. 83년 멕시코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이룩하자 외국언론들은 붉은색 유니폼을 입었던 한국대표팀에 ‘붉은 악령’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붉은 악마’는 여기서 나왔다.

붉은 악마 응원단의 특징은 개방성과 자율성. 축구와 대표팀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으며 가입비나 연회비도 없다. 가입을 위해서는 붉은 악마 홈페이지(www.reddevil.or.kr)에서 소정의 가입 절차만을 거치면 된다.

신동민 붉은 악마 응원단 미디어팀장은 “축구 응원단으로 시작했지만 축구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자유롭고 질서 있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붉은 악마의 내년 활동 계획은 23일과 24일 유성에서 열리는 각 시도 지부 대의원총회에서 결정된다. 어떤 경우라도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길거리 응원단' 외신반응▼

▽한국이 하나가 된 날-6월23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붉은 파도가 출렁이면 한국이 승리-6월5일 스페인 ABC방송

▽거리로 나간 수백만, 평화로운 응원 분위기와 성숙한 시민의식 돋보여-6월19일 영국 BBC방송

▽한국전 열리는 날은 전국이 ‘가상 경기장’-6월21일 미국 LA타임즈

▽한국의 경기는 아시아인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한국팬의 환호는 아시아를 부럽게 한다-6월20일 베이징신보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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