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편지가족연합회 박청자회장

  • 입력 1997년 5월 19일 08시 08분


편지 써본 게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휴대전화부터 PC통신까지 단번에 사람사이를 연결해주는 편리한 세상. 그래도 틈만 나면 편지를 쓰는 이색적인 주부모임이 있다. 편지가족 전국연합회. 우정사업진흥회가 해마다 주최하는 전국주부편지쓰기대회의 입상자들이 만든 단체다. 92년말 발족한 이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박청자씨(55·경기 안성군)는 요즘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한다. 회원들의 글과 96년 수상작을 모아 「편지가 있는 풍경」(임씨네 간)이란 책을 최근 펴낸 것. 『회원들끼리 돌려보던 것을 세상에 처음 선을 보이게 돼 기쁩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들의 서툴고 투박한 글이지만 진실된 삶의 이야기라는 격려를 많이 받고 있어요』 모임에는 6백여명의 회원이 있다. 나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 학력이나 생활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편지를 공통분모로 자매처럼 친하게 지낸다. 재소자들이나 고아원, 결손가정의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회원도 많다. 『편지를 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것 같아요. 고부갈등으로 이혼 직전까지 간 회원에게 나이든 이들이 꾸준히 편지를 보내 다시 행복을 찾도록 이끌어준 경우도 있어요』 글과 가까워지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92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시아주버니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면서 손아래 동서에게 보낸 편지로 은상을 받았던 박씨도 이듬해 문예지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그래도 편지를 제일 아낀다. 『전화는 편지의 정감을 못따라가요. 부부싸움뒤에도 한장의 편지로 냉전은 눈녹듯 끝나죠』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편지가 사라지고 있음을 아쉬워하는 그는 주부들에게 글을 통한 대화를 해보라고 권한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기 이름을 다시 찾는 즐거움을 느껴보라고. 〈고미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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