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 2천원인 커피숍에서 주덕한씨(30·서울 노고산동)를 만났다. “커피값이 비교적 싸네요”라고 인사말처럼 건넸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씨는 손큰 며느리를 나무라는 시어머니 같은 표정이 됐다.
“2천원이면 동태가 네 마리예요, 네 마리. 5백원짜리 동태 한마리면 4인 가족이 한 끼를 먹을 수 있고요.”
그 뒤 그의 입에서 술술 풀려 나오는 살림정보.
“수게는 10월말에 맛이 좋고 암게는 4월말에 신선해요.”
“노량진수산시장엔 오후 3, 4시에 싸고 용산농협에 물건이 많아요.”
1년 남짓 백수로 지내다 ‘특기’를 살려 지난해 10월부터 파출부로 나섰다는 주씨. 입소문이 퍼져 들어오는 일거리를 골라잡아야 할 정도다.
청소 빨래 요리는 기본. 집들이나 돌잔치를 할 땐 예산에 맞춰 장보기부터 상차림까지 끝내준다. 부부가 집을 비우고 여행을 떠나면 집안을 말끔하게 청소해놓고 냉장고에는 밑반찬을 꽉꽉 채워준다. 보수는 대개 하루 5만원 정도.
“집안일은 사실 남자가 더 잘할 것 같아요. 장바구니며 무거운 것을 나를 때도 많고 일이 참 고되거든요.”
남자 파출부를 영 못 미더워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는 사실 이 날을 위해 차근차근 수업을 쌓아온 ‘준비된 파출부’다.
초등학교 때부터 세살 위인 누나의 요리조수를 하며 기본기를 다졌다. 대학입학 이후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자취시절엔 각종 요리를 섭렵했다. 빨래 삶을 때의 냄새가 좋아 평소에도 즐겨 빨래를 삶는다는 그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재미있는 놀이처럼 가르치면 어떨까요. 남자아이라고 집안일을 못하게 하지 말고 요리도 시키고 빨래도 시키면 결혼한 뒤에도 똑같이 가사분담을 할 걸요.”
그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매우 못마땅하다는 눈치다. 이젠 부모도 이해하고 친구들도 “파출부 일 열심히 해서 돈벌어 술 사라”고 격려하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은 적잖았다.
어렸을 적엔 탐험가가 되고 싶었다. 성균관대 역사학과 87학번. 대학 졸업 후 2백만원을 들고 이벤트를 공부하러 영국유학을 떠났다. 2년 계획의 유학은 돈이 바닥나 2개월만에 끝났고 배낭여행만 하다 돌아왔다.
그후 외국에서 마차를 들여와 웨딩이벤트 사업을 시작하고 낙타를 수입해 서울 강남에서 ‘낙타택시’를 몰려던 두 가지 사업도 돈 때문에 포기했다. 지난해에는 백수의 체험담을 담은 책 ‘캔맥주를 마시며 생각해낸 인생을 즐기는 방법 170’을 펴내기도 했다.
이왕 시작한 파출부. ‘프로 백수’만큼이나 ‘프로 파출부’로도 이름을 날리고 싶다. ‘아줌마 파출부’와 확실하게 차별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주부들에게 짬짬이 컴퓨터를 가르치는 일도 한다.
요즘은 뜨개질을 배우려고 알아보는 중이다. ‘총각이 뜬 스웨터’라고 이름붙이면 불티나게 팔릴 거라는 기대감 때문.
“살림 잘하는 남편을 원하는 여자와 결혼할 거예요. 물론 결혼해서도 파출부 일은 계속해야지요.”
〈윤경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