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愚公移山·우공이라는 노인이 대를 이어 산을 옮기려고 했다는 이야기)’고사에 등장하는 산의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됐을까? 2008베이징올림픽 남자역도 77kg급 금메달리스트 사재혁(27·강원도청)의 연간 훈련량이면, 아마 작은 동산 하나 정도는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남자역도대표팀 이형근 감독은 “보조 운동까지 합하면, 하루에 4∼5만kg 정도를 다룬다. 1년 동안 훈련일수가 약 250일은 족히 되니, 연간 1만 톤 이상을 들어올리는 셈”이라고 설명한다. 역도의 대회 준비는 무거운 기구와 쉼 없는 싸움을 반복하는 과정이다. 역도전문가들은 “일주일 운동을 쉬면, 몸을 회복하는 데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큰 부상 뒤 재기에 성공하기가 다른 종목에 비해 더 힘든 이유다. 하지만 무려 5번의 수술을 받고도, 세계정상급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역사(力士)가 있다. 2012런던올림픽에서 한국역도사상 최초로 대회 2연패에 도전하는 사재혁이 그 주인공이다.
2010년 비공인 세계신을 들었다 호사다마…또 한번 닥친 부상 시련 어깨수술 받고 세계선수권·AG 불참 다시는 바벨을 잡고싶지 않았다
절망의 순간 힘을 준 건 우승자 기록 내가 들었던 것보다 11kg 가벼웠다 재기 의지 불끈!…몸 만들기 매진
장미란 누나는 역도 선수의 본보기
대표팀 이형근 감독님은 정신적 지주 올림픽 2연패, 한국역도 새역사 쓰고 런던서 감독님께 큰 절 한 번 올릴래요
○천재 역사?
-다들 천재라고 부르던데, 본인 생각은 어때요?
“예전에는 그런 소리 좀 들었죠. 그 때마다 ‘아닙니다’라고 부정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하) 좀 식상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천재라도 안 돼요. 운동은 정말 그래요.”
-왜 주변에서 천재라고 얘기할까요?
“성적도 성적이지만, 부상 때문에 오래 쉬고 복귀해도 기록을 내니까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남들은 조금만 쉬어도 힘든데…. 전 수술 이후에도, 계속 운동했던 선수보다 잘 하니까….”
(그
는 2001년 무릎수술을 시작으로, 2003년 어깨(2회), 2005년 손목 등에 차례로 메스를 댔다. 그리고 2010년에는 또 한번 어깨수술을 받아야 했다. 2005년 수술 때는 워낙 그의 골밀도가 높아 고가의 수술장비가 망가진 일화도 있다)
-혹시 부상이 없었다면, 운동을 더 잘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하나요?
“물론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부상 덕에 더 단단해지고, 저를 돌아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못 봤던 것들도 시야에 들어오더라고요. 타고난 몸만 믿던 제가 겸손함을 배운 거죠. 마음은 힘들었지만, 더 큰 사물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할까요?”
○시련의 2010년을 딛고 서다
-2010년 상반기에 페이스가 상당히 좋았는데….(그는 2010년 5월 전국남자역도선수권에서 용상211kg을 들어올렸다. 비공인세계기록이었다. 하지만 그 해 6월 어깨수술을 받았다)
“부상 때문에 2010터키세계선수권(9월)과 2010광저우아시안게임(11월) 불참한 것이 많이 아쉬웠지요. 터키세계선수권 용상1위 기록이 200kg이었어요. 만약 그 때 경쟁자들 기록이 좋았다면, 그만뒀을 거예요.”
-그만두려 했다고요? 왜요?
“역도는 계속 했을지 몰라도, 아마 대표팀에서는 나왔을 거예요. 우리는 상대기록을 딱 보면 답이 나와요. 기록이 너무 확 벌어지면 열심히 해도 안될 것을 아니까요. 그런데 중국(뤼샤오준)이나 아르메니아(티그란 마르티로시안) 선수 용상기록(200kg)이 제가 5월에 들었던 것(211kg)과 너무 차이가 보이더라고요.”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TV 중계는 봤나요?
“보기는 했는데…. 마음이 안 좋았죠. 5월 기록이면, 터키세계선수권도 아시안게임도 모두 1등인데…. 그럼 그랜드슬램이잖아요. 세상일은 뭐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원래는 2012런던올림픽까지만 하고, 대표팀을 그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2010년 수술 이후에는 2014인천아시안게임까지로 목표를 늘려 잡았어요.”
○사재혁과 장미란
-어떤 분들은 “사재혁이 장미란의 그늘에 가린 측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남자도 올림픽금메달 따기 힘든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시기나 질투는 정말 없어요. (장)미란(29·고양시청) 누나도 그것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그래서 더 조심스러울 거고요.”
-장미란 선수에게 배우는 점은?
“미란 누나는 역도 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종목을 통틀어서 선수들의 본보기라고 생각해요. 자기 관리나 운동을 대하는 자세 모든 면에서요. 제가 태릉에서 많은 선수들을 봐왔지만, 미란 누나처럼 할 수 있는 선수는 ‘장미란’ 한 명뿐이에요. (재차 강조하며) 절대 없어요.”
-장미란-사재혁 선수 중에 힘은 누가 더 센가요?
“전 힘이 약해요. 얼마 전에 악력 측정을 했는데, 저는 미란 누나 상대가 안 돼요.”
-이것 만큼은 장미란 선수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은?
“운동능력? 키(168cm)가 작아서 농구 골대에 손이 닿지는 않지만, 조금 더 젊었을 때는 진짜 서전트 점프 1m 뛰었어요.”
(장미란은 “(사)재혁이가 운동을 열심히 할뿐더러, 운동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많이 하는 선수”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세와 관련된
부분은 역도선수에게 스트레스일 수도 있는데, 재혁이는 자기의 경기 영상뿐만 아니라 남의 영상까지 보면서 연구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역도 후배로서 예쁘고 대견하다”고 칭찬했다)
○이형근 감독과 사재혁
-평소 이형근 감독님을 “정신적 지주”라고 말해왔는데, 첫 인상은 어땠나요?
“2004년 말 태릉에 들어오면서 처음 뵈었는데, 그 때는 다가가기 힘든 분이셨어요. 호랑이 앞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점점 ‘저 분만 따라가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지요.”
-개성이 강한 사재혁 선수를 이 감독님이 어떻게 휘어잡으셨을까요?
“꼭 저한테만 그러신 게 아니라, 어느 선수에게도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세요. 하지만 항상 제가 필요한 자리에 버티고 계시죠.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시는 분? 감독님께서 보고 계실 때와 보고 계시지 않을 때 훈련 성과가 달라질 정도에요.”
-언젠가 감독님 목말을 태워드리고 싶단 말을 하지 않았나요?
“베이징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고, 감독님을 무대 위로 모시고 나와서 같이 (관중들에게) 인사를 했어요. 이번 런던올림픽 때 좋은 결과가 있다면, 감독님께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싶어요. 저도 이번이 올림픽은 마지막이 될 테니까….”
(이형근 감독은 1988서울올림픽동메달리스트로, 태릉에서 지도자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5번의 수술에 지친 사재혁이 바벨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마다, 그를 잡아준 인물이 이 감독이다. 사재혁은 이 감독에 대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정신적 멘토”라고 표현한다)
○2012런던올림픽
-체급을 77kg급에서 85kg급으로 상향 조정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던데요.
“좀 앞서나간 것 같아요. 원래 국가대표선발전(4월) 뛰고 결정하려고 했는데…. 일단 선발전에서는 85kg급을 뛰고, 올림픽에서는 77kg급을 뛸 생각입니다. 인상167kg·용상215kg이 목표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 기록도 77kg급을 뛴다는 가정 하에서요. 85kg급이 아니라.”
(이형근 감독은 “사재혁의 평소 체중이 80kg이라서, 감량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선발전에서는 85kg급을 뛴다”고 설명했다. 올림픽에서는 베이징 때와 마찬가지로 77kg급에 나설 예정이다)
-211kg(비공인세계기록)과 210kg(용상세계기록)을 들 때의 차이를 좀 느끼나요?
“심리적인 부분도 있고, 1kg이지만 정말 무게의 차이도 있죠. 예를 들어, 199kg과 200kg도 차이가 엄청나요. 그래서 어린 선수들에게는 무게를 속이고, 들어보라고 할 때도 있어요. 정말 컨디션이 좋으면, 200kg이 100kg같고, 안 좋으면 200kg이 400kg 같아요.”
(“상대성 이론이 도대체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사랑하는 여인과 키스를 하면 3분도 3초처럼 짧게 느껴지지만, 난로 위에 손을 얹어놓으면 3초도 3분처럼 길다”고 답한 아인슈타인의 일화가 떠올랐다)
-211kg은 대체 얼마나 무거운가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와우. 올릴 때가 힘들어서 그렇지, 들고 있는 순간은 무겁지 않아요.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요, 관절이 정확히 받쳐주면 무거운 느낌이 별로 안 든다고 해야 하나? 결국 역도는 힘이 아니라, 기술에서 승패가 갈리는 것이거든요. 들고 있는 그 순간은 정말 짜릿하지요.”
-올림픽2연패는 정말 힘들다고 하잖아요. 금메달을 이후 목표의식이 떨어지지는 않았나요?
“제가 이렇게 인터뷰도 하는 것도 현역 선수이기 때문이잖아요. 전 워낙 많이 부상을 당해봐서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내가
정말 금메달을 따겠다.’ 그럼 오히려 더 안돼요. 부담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표현하지 않으려고 해요.”
-등수가 아니라, 기록이 목표라서 그렇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승부는 언제나 지고 싶지 않아요. 지금 중국 선수들도 (기록은) 다 맥시멈이에요. 기록이 나오면 금메달을 따는 것은 맞지만. 사실 올림픽은 메달이 중요하죠. 그 중에서도 금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