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펜싱]김영호, 펜싱사상 첫 금

  • 입력 2000년 9월 20일 17시 25분


김영호(29·대전도시개발공사)가 한국 펜싱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 펜싱의 간판 스타인 김영호는 20일 달링하버 전시홀에서 열린 펜싱 남자 개인 플뢰레 결승에서 팽팽한 접전 끝에 비스도르프 랄프(독일)를 15-14로 꺾고 우승했다.

브리스 기야(프랑스), 클리프베이여(미국)를 차례로 꺾은 김영호는 8강서 세르기 고르비츠키(우크라이나)를 맞아 경기시작 5분24초만에 15-5로 이기며 상승세를 탔다. 이어 김영호는 준결승서 만난 강호 체브첸코(러시아)와 팽팽한 접전 끝에 15-14, 1점차의 신승을 거둬 결승에 올랐다.

파란을 일으킨 에페 이상기(34·익산시청)의 동메달과 함께 2개의 메달을 획득한 한국펜싱은 이번 올림픽에서 떠오르는 ‘효자종목’으로 발돋움 했다.

한국 펜싱은 84년 LA올림픽때부터 남녀대표팀을 꾸준히 올림픽에 출전시켰으나 한번도 메달권에 진입해보지 못했고, 또 인기 종목과는 거리가 멀어 팬들의 관심밖에 있었다.

▼김영호는 누구▼

올림픽출전 16년만에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김영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검객.

180㎝, 78㎏ 훤칠한 체격을 지닌 김영호는 뛰어난 순발력을 바탕으로 순간적으로 상대방 뒷편 어깨를 찍어버리는 주특기로 세계 내로라하는 검객들을 모두 굴복시키고 정상에 올랐다.

김영호는 충남 연산중 1학년때 펜싱부 선배들이 쓰고 있던 마스크에 매료돼 처음으로 칼을 잡았다.

김영호는 대전 충남기계공고와 대전대를 졸업하면서 착실히 기본기를 다졌고 95년 국군체육부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며 국내 무대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국제무대에도 두각을 나타내기시작한 김영호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 플뢰레 개인전에서 8강에 오르며 선전했으나 메달권 진입에는 실패했다.

피나는 훈련을 거듭한 김영호는 97년 남아공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내펜싱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한국펜싱의 역사를 바꿔가기 시작했다.

김영호는 올림픽보다 더 험난하다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과 동메달을 획득했고 지난해 대우그랑프리와 테헤란국제펜싱대회에서 우승하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김영호는 9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왕하이빈에게 정상을 내주고 2월 팀훈련에 몰두하던 중 쓰러져 허파기흉 제거수술을 받는 바람에 같은달 열린 대우그랑프리대회에서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등 한때 선수생명 중단위기까지 몰렸었다.

재기에 성공한 김영호는 국제무대에서 끈질지게 자신을 괴롭히던 중국의 왕하이빈과 세르게이 골루비츠키(우크라이나)를 최근 국제무대에서 연달아 격파해 시드니우승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김영호는 특히 스피드에 비해 파워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올림픽에 대비해올들어 체중을 7㎏이나 늘렸다.이번 대회에서도 유연한 몸놀림에 뛰어난 스피드 등 수술전보다도 원숙한 칼솜씨로 세계 정상급 검객의 면모를 과시했다.

김영호는 국내에 훈련 상대가 없어 지방을 전전하는 등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지만 현역 은퇴 후에도 지도자로서 한국 펜싱 발전에 인생을 걸겠다는 계획이다.

함께 펜싱 국가대표를 지낸 김영아(27)씨와 3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김진호<동아닷컴 기자>jin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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