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84 LA올림픽 10m 플랫폼 여자부에서 주지홍이 금메달을 때낸 이후 이번 올림픽까지 5번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96애틀랜타에선 남자 10m 플랫폼을 제외한 3개의 금메달을 모두 중국의 차지.
이번 올림픽 초반 연속 러시아와 미국에 금메달을 내줘 불안한 출발을 했던 중국은 26일 3m 스프링보드 남자부에서 슝니가 첫 금메달을 따낸데 이어 28일에는 남녀가 함께 금메달을 따내는 등 ‘싹쓸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중국 다이빙팀 구성을 보면 한국 여자양궁과 닮은 꼴이다. 신예들의 실력이 미덥지 못하자 우리가 ‘신궁’ 김수녕을 복귀시킨 것처럼 중국은 현역 은퇴 후 완구수출회사 사장인 슝니와 경제학도 푸밍샤를 현역에 복귀시켰다.
중국이 다이빙 강국이 될 수 있던 이유는 슝니와 푸밍샤를 보면 알 수 있다. 후난성 창샤(슝니), 후베이성 우한(푸밍샤) 등 시골출신인 이들은 9세 때 전격적으로 발탁돼 수년동안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았다.
푸밍샤가 92 바르셀로나 때 금메달을 따내고 기자회견장에서 아버지 직업을 묻자 ‘모른다’라고 대답한 사건은 이들이 얼마나 격리된 가운데 ‘다이빙 기계’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순진한 시골아이들을 데려다가 잡념없이 운동에만 매달리게 한 것.
남녀 4명씩 모두 8명의 선수가 출전한 중국팀은 4명이 70년대생이고 나머지는 모두 80년대 중반으로 확연히 신구선수가 구분된다.
쌍쉐와 리나 등 신예들은 바로 96년 푸밍샤가 은퇴선언한 뒤 전국을 뒤져 10억 인구 중에서 뽑은 꿈나무들.
이들은 하루에 100번 이상씩 다이빙을 했다고 말한다. 이는 1년이면 3만번이 넘게 물에 뛰어들었다는 얘기.
이번 대회에 다이빙 선수들을 따라온 코치는 선수들보다 한명 적은 7명. 슝니와 샤오 하이리앙 두선수만 헹린리우코치에게 배우고 나머지는 모두 개인코치들.
3000여명의 선수가 활동하는 중국 다이빙에서 국내 올림픽 대표선발전을 통과하는 것은 올림픽 메달보다 어렵다. 한국여자양궁이 그렇하듯.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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