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수 없다. 내 골프 인생의 모든 기록을 그녀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첫 이글, 첫 싱글, 첫 이븐파. 또 결코 잊을수 없는 어느해 하짓날의 첫 72홀 라운딩.
그린앞에 대형연못을 입을 벌리고 있는 이포CC 6번홀(파4·347m). 페어웨이와 그린의 높이가 같아 그린까지의 거리가 짧다는 착각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두번째 샷에 신중해야 한다.<사진제공 이포CC> |
올해는 국내 최대 밝기 250룩스 라이트시설이 완비됐으니 시원한 여름밤 90홀 라운딩 도전이 나를 유혹한다. 아마도 내 생애 첫 홀인원도 그녀가 준비하고 있을 게다.
이포CC는 코스배열이 마치 인생 행로처럼 신비롭게 엮어져 있어 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그 묘미는 새롭다. 특히 마스터스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GC처럼 홀마다 붙여진 이름은 그 재미를 배가 시켜준다.
시원스럽게 내려치는 1번홀(靑雲立地.청운입지)을 시작으로 3번홀까지는 한없이 너그럽다. 그러나 자만은 금물. 그녀의 ‘치마 속’에는 ‘비수’도 있고 ‘은장도’도 있다.
수많은 골퍼들의 두 번째샷을 온몸으로 방해하다 장렬히 사라진 5번홀(仁者無敵.인자무적). 페어웨이 소나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안심한채 샷을 하다보면 오른쪽으로 OB가 나기 십상이다. 핸디캡 1번홀인 8번홀은 길기도 하거니와 페어웨이의 굴곡이 심하고 파온을 노려볼수 있는 지점에는 벙커가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하지만 그린이 평탄한게 핸디캡 1번홀의 ‘옥에 티’. 핸디캡을 유지하려면 그녀의 치마에 ‘주름’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인코스로 들어서면서 그녀는 서서히 비수를 들이댄다. 11번홀 페어웨이 벙커는 일단 빠지면 앞,뒤,옆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가까운 쪽으로 탈출해야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14번홀(兩者擇一.양자택일)은 그날의 스코어를 좌우하는 하이라이트 홀이다. 그린앞 좁아진 페어웨이와 나무를 넘기느냐? 옆으로 굴려 돌아가느냐?. 회심의 굿샷으로 버디를 낚을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영락없이 더블 파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되는 15번홀(糟糠之妻.조강지처). 이포CC 그늘집의 ‘특별메뉴’인 캔 막걸리‘월매’와 녹두빈대떡을 먹고 가느냐? 그냥 가느냐?.
이 홀에선 전 홀에서 받은 열을 시원한 막걸리로 식힌 손님들 때문에 경기보조원들이 진행에 애를 먹기 일쑤다.
마지막 승부처는 파3홀인 17번홀(啞耳苦惹.아이고야).티잉그라운드가 워터해저드로 향해 있어 처음온 골퍼는 십중팔구 물에 빠뜨리고 ‘아이고야’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
마지막 18번홀. 그리 어렵지가 않다. 다시 오라는 진한 여운을 남겨준다.
편남영(퍼시스 오피스플래너· 핸디캡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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