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코리아사단 출신의 최상호는 10여명의 연습생 중 가장 늦게 프로에 데뷔했다. 키도 가장 작고 체구도 볼품없었던 최상호는 예상대로 7전8기를 거친 후에야 프로 자격을 얻었다. 선배들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고 ‘프로를 포기해야 하나’ 갈등도 적지 않았지만, 23세 되던 77년 골프채를 잡은 지 7년 만에 테스트에 합격했다.
1년 뒤 첫 경기인 여주오픈. 이 대회는 한국 프로골프 사상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당시 최고 상금액이 걸려 있었고 중계까지 되었던 것. 최상호는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한 티셔츠와 면바지로 차려입고 경기에 나섰다. 최종일 선두와 3타 차. 마지막 조는 한장상, 김승학으로 한국 프로골프계의 대들보였던 대선배들. 압박감 속에서 최상호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버텨냈고 막판 뒤집기로 우승을 따내 상금 300만원과 트로피를 안았다. 태어나서 정당하게 벌어들인 ‘용돈’ 아닌 ‘수입’이었다. 이 우승이 도화선이 되어 이후 최상호는 매년 1승 이상을 추가하며 골프사에 큰 획을 그어왔다. “욕심이지만 50승이 목표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프로가 되겠다”는 최상호. 재산목록 1호인 여주오픈 우승 트로피는 오늘도 여전히 그에게 마음의 버팀목이 된다.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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