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구릉과 언덕 사이로 불어대는 바람이 선선하다. 사방은 고요하다. 바람이 풀과 나무를 흔드는 것을 빼면, 하늘 위 구름들이 다른 곳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빼면 적막하게 느껴질 정도. 그러나 변화 많은 일기 자체가 고요속의 역동을 느끼게 해 준다.
수시로 비가 내리다 그치고, 이곳에는 비가 내리는데 저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풍경이 보인다.
1년 중 상당 기간이 날이 흐린 곳이어서 어쩌다 햇빛이 나고 푸른 하늘이 보일 때면 그 이미지가 너무 선명하다. 흐린 만큼 더 빛나게 보인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봄이 혹은 여름 하늘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다. “날은 대부분 흐리지만 햇빛이 빛날 때의 이 곳 풍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자랑한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런 곳을 전지훈련 장소로 택한 데 대한 추측이 많다. 감독 자신은 “자연환경과 시설이 좋다”는 이유를 들었다.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다는 점에서는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안정환은 “독일도 어차피 이런 날씨다. 이런 데 적응해야 한다. 날이 자주 흐린 것은 큰 문제없다”고 말했다. 독일과 비슷한 날씨를 택해 왔다는 말로 들인다.
하지만 독일로 직접 들어가 훈련하는 것만은 못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 대해 대한축구협회 이영무 기술위원장이 답했다. “집중력” 때문이라는 것.
이곳은 사방이 고요하고 주변에 별다른 시설이 없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다. 해외 언론의 취재를 피하자는 측면도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과 대표팀은 많은 국내외의 관심과 요구 사항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고요 속에 부는 바람처럼 정중동(靜中動·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모습)하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 집중이 힘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그들은 수시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다 그치는 이곳의 날씨처럼 불확실한 상황을 뚫고 나갈 마음가짐을 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불확실성을 뚫고 성공했을 때는 이곳 사람들이 흐린 날 속의 자신들의 봄과 여름 햇빛을 자랑하는 것처럼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글래스고=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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