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농구는 전·후반 경기였다. 1940년대 후반에 출범한 미국프로농구(NBA)는 달랐다. 전·후반을 쪼개 4쿼터를 만들었다. 그 배경에는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 늘어야 광고를 더 많이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후반 시스템을 고집하던 국제농구연맹(FIBA)은 결국 1990년대 이후 4쿼터 제도를 도입했다. 팬들의 인기를 등에 업은 NBA 사무국이 FIBA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스포츠 천국’ 미국의 4대 프로 스포츠로는 야구(MLB), 미식축구(NFL), 농구, 아이스하키(NHL)가 꼽힌다. 축구가 이 종목들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이유는 방송사가 외면한 탓이 크다. 축구 중계에서 광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전·후반 사이가 유일하다. 작전 타임도 없고 선수를 교체할 때도 경기는 계속된다. 1980년대 미국 프로축구는 더 많은 골을 유도해 방송사들의 관심을 끌겠다며 오프사이드 룰을 완화했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이 “회원에서 제명하겠다”고 경고하자 FIFA 룰로 복귀했다. ‘글로벌 스포츠’라는 점이 미국 프로축구 흥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K리그 간판스타인 전북 이동국이 어린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밝힌 ‘소신 발언’을 놓고 축구팬과 야구팬들의 논쟁이 뜨거웠다. 이날 프로야구는 지상파 3곳을 포함해 11개 채널이 중계했다. 한화-kt 경기는 5개 채널이 중계했다. 이동국은 ‘전파 낭비’라는 표현을 써 가며 이 점을 지적했다. 반면에 프로축구는 TV를 통해 볼 수 없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지상파 중계 경기는 케이블 채널이 들어올 수 없다. 지상파가 선택하지 않은 2경기를 케이블 채널 5곳과 인터넷TV(IPTV) 채널 3곳이 중계하다 보니 한 경기에 5곳이 몰렸다”고 밝혔다.
▷이날 K리그 클래식은 2경기(제주-울산, 포항-부산)가 열렸다. ‘어린이날 이벤트’로 보기에는 관심을 끌기 어려운 매치였다. 만약 이날 수원-서울의 ‘슈퍼매치’나 울산-포항의 ‘동해안 더비’를 잡아놨다면 중계를 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송사들이 어린이날 프로야구 중계를 일찌감치 편성해 놨기 때문이다. 어차피 중계가 되지 않는다면 확실한 흥행 카드는 중계를 할 수 있을 때 꺼내는 게 낫다는 게 프로축구연맹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동국의 발언을 놓고 일부 야구팬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축구를 중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것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2일 KBS1을 통해 방송된 전북-수원 경기의 전국 시청률(닐슨코리아)은 2%가 넘었다. 5일 지상파로 중계된 프로야구 3경기 가운데 시청률 2%를 넘은 경기는 하나뿐이었다. 프로야구는 전 경기를 중계하기에 시청률이 분산된다는 점을 감안해도 휴일 낮 시청률 2% 이상이 무시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인기가 없어 중계를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프로축구가 TV와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린이날 축구 보고 싶은 어린이들은 어떡하라고’라는 이동국의 안타까움은 풀릴 수 없는 문제일까. 당장은 쉽지 않을 듯 보인다. 한두 경기 시청률이 좋다고 광고가 따라 붙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기장에 관중이 꾸준히 들어차면 미디어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06년만 해도 국내 프로야구는 이승엽(삼성)이 뛰던 일본 프로야구에 밀려 하루에 2경기만 중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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