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기자의 인저리 타임]통영 출신 ‘골 폭격기’, ‘인천 짠물’ 다됐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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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프로축구 사령탑에 데뷔한 인천 김도훈 감독(45·사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골잡이였다. 1995년 전북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2000년 20경기에서 12골을 넣어 첫 득점왕에 올랐다. 성남으로 옮긴 2003년에는 40경기에서 28골을 터뜨려 두 번째 득점왕이 됐다. 김 감독은 2003년 리그 우승과 최우수선수(MVP)까지 휩쓸었고 2004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득점왕이 됐다. 그가 세운 통산 6차례의 해트트릭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선수 시절 김 감독의 별명은 ‘폭격기’. 하지만 그가 이끌고 있는 인천은 올 시즌 공격과는 거리가 멀다. ‘짠물 축구’라고 불릴 만큼 수비가 돋보인다. 31일까지 인천의 팀 득점은 K리그 클래식 12개 팀 중 9위(28득점)다. 반면 팀 실점은 가장 적다(23실점). 한 경기 평균 0.82점만 내줬다. 선수 시절 김 감독의 성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골을) 적게 넣고 더 적게 먹은’ 덕분에 인천은 최근 4연승을 질주하며 상위 스플릿에 포함되는 6위에 올라 있다.

▷시즌 전 인천은 유력한 강등 후보였다.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났다. 구단 예산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탓이었다. 김 감독은 “팀에 왔을 때 선수들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부담이 컸다. 그래도 클래식 잔류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기본과 인성을 강조하며 훈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폭격’ 대신 ‘방어’에 중점을 뒀다. 공격은 개인 능력에 크게 좌우되지만 수비는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몸값 비싼 공격수를 데려올 수 없는 상황에서 수비축구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붙박이 주전으로 내세울 만한 선수들은 몇 명 없었다. 내부 경쟁을 통해 출전시킬 선수들을 골라내야 했다.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들이 모처럼 찾아온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 못 뛰면 내일은 꼭 나가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을 땀으로 녹이면서 김 감독은 팀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칭찬해 주고 싶은 선수들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뒤에서 노력하는 선수들”이라고 답했다.

▷올 시즌 클래식에 데뷔한 감독은 12개 팀 중 절반인 6명이다. 모두 40대인 그들 중 김 감독의 인천이 가장 순위가 높다. 김 감독은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았다. 중위권 팀들끼리의 승점 차가 크지 않아 최종 순위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클래식 잔류라는 목표를 상위 스플릿으로 상향 조정한 것은 맞다”며 웃었다. 올해 그의 이름 앞에는 ‘늑대 축구’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늑대처럼 팀과 조직력을 앞세운 축구를 구사한다는 의미다. 맘에 드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감사하죠. 초보 감독한테 그런 별명을 붙여주신 것도 과분하고…. 그런데 바다에 사는 동물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인천이 항구도시잖아요.” 고향이 경남 통영인 김 감독, 인천 사람 다 됐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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