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기자의 인저리 타임]‘전설’을 이렇게 보내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8일 03시 00분


전남과 재계약 무산된 GK 김병지, 7월 700경기 채우자 출전 뜸해져
구단은 그때 이미 결정 내리고 한번의 대화도 없이 방출조치

▷전남 골키퍼 김병지(45)가 26일 제주와의 경기에서 최초로 통산 7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대기록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전남은 이날 승리로 3위가 됐다. 시즌 초반 중하위권이던 전남은 6월 6일 인천전 승리를 시작으로 6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전남의 최근 다섯 시즌 순위는 10→7→11→10→7위였다. (중략) 전남 노상래 감독은 친구의 700경기 출전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는 “선수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조카뻘인 후배들이 ‘이날은 꼭 이겨야 한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인저리타임’이 7월 31일 자에 게재했던 내용이다.

▷700경기를 채울 때까지 2경기만 빼고 주전으로 나섰던 김병지(사진)는 이후 출전이 뜸해졌다. 9월 23일 수원전을 끝으로 그라운드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한때 3위였던 전남은 9위로 시즌을 마쳤다. 김병지는 최근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병지 삼촌, 700경기가 아니라 777경기까지 뛰고 은퇴하세요”라는 전남 후배 이종호(23)의 말마따나 2년은 더 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를 데려가겠다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는 한 김병지의 통산 출전 기록은 ‘706’에서 멈추게 된다. 선수로 4반세기(25년)를 채우고 싶다던 꿈 역시 1년을 남기고 무산된다.

▷김병지는 올해 8경기 무실점을 포함해 27경기에서 30실점을 기록했다. 경기당 1.11골의 수준급 성적이다. 처음 전남 유니폼을 입은 2013년에 1.16골이었고 지난해에는 1.39골이었다. 3년 동안 가장 좋은 기록을 올린 그를 구단은 붙잡지 않았다. 김병지는 “700경기 출장 이후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컨디션이 좋은데도 출전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병지는 최근 노 감독과의 면담에서 그 ‘분위기’가 뭔지를 알았다고 했다. 구단이 일찌감치 자신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 대신 골문을 책임질 후배 선수들을 기용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종목을 불문하고 연봉을 많이 받는 베테랑 선수와 구단은 은퇴를 놓고 대립하기 마련이다. 선수는 더 뛰려 하고 구단은 반대한다. “혹시 은퇴하고 코치를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느냐”고 묻자 그는 “은퇴 여부와 관련해 구단과는 어떤 얘기도 한 적이 없다. 노 감독은 내가 남기를 원했고 구단에 얘기해 보겠다고 했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친구인 노 감독에게 부담을 주기는 싫었다”고 말했다.

▷지난주 재계약 불발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김병지는 “공식적으로 결정된 게 없다”는 구단의 말을 조금은 믿는 듯했다. 구단은 그 뒤에도 말이 없었고, 김병지는 마음을 정리한 듯했다. “인생이라는 게 정답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쉬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선수, 지도자, 행정…. 뭐든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겠죠.” 그의 말대로 축구팬들은 생명력 강한 ‘꽁지머리’ 김병지를 앞으로도 어디선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구단의 태도에 더 아쉬움이 남는다. ‘아름다운 이별’까지는 아니라도 ‘허심탄회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저 그런 선수도 아닌 700경기 출장의 ‘전설’ 김병지인데….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김병지#700경기#재계약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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