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일류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중고교 때 전국 대회에 나가 활약해야 한다. 나는 세 살 때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3학년이 된 뒤로는 1년에 360일을 강도 높게 연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프로에 입단할 것이다.”
한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가 졸업을 앞두고 쓴 글의 일부다. 세 살 때부터 연습을 했다고는 하지만 야구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건 3학년 때부터다.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는 야구부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아버지를 훈련 파트너 삼아 타격과 투구 연습을 했다. 아이는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중학교 야구부 감독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기겠다”며 이런 부탁을 한다. 야단은 쳐도 되지만 칭찬은 하지 말아 달라는 것.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알려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는다.
얼마 전 만난 한 스케이팅 지도자의 말을 듣다 야구 소년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스케이팅 강습 지도자는 “오늘은 또 무슨 칭찬을 해 줘야 하나 하고 고민할 때가 있다”고 했다. 연습이 끝나면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찾아와 얘기를 나눌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듣다 보면 결국에는 “뭐든 좋으니 우리 아이가 오늘 잘한 것 좀 말해 줘요” 하는 식으로 분위기가 흘러간다는 것. 날마다 칭찬할 게 있으면 해 주겠는데 그런 게 아니니 고역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부모들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일 경우엔 칭찬의 강도를 비슷하게 맞추는 데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아무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이쯤 되면 이만저만 피곤한 일이 아니다.
비슷한 얘기를 하는 유소년 축구 클럽 지도자도 있다. 지도자의 눈엔 아이의 실력이 평범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아이가 축구 선수로 성공할 자질이 충분해 보인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 지도자가 판단하기에 웬만큼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라면 부모의 눈에는 이미 ‘리틀 메시’요, ‘제2의 호날두’다. 그나마 스케이팅은 “우리 아이 잘하지 않았나요?”하고 물어보는 식이었지만 축구는 워낙 대중 스포츠라 그런지 “우리 아이 잘했잖아요!” 하는 투의 부모도 드문드문 있다. 이럴 땐 말을 안 해 그렇지 지도자 입장에서는 열불이 난다.
아이를 축구 선수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테스트를 받고 싶다며 프로 팀 산하 유소년 팀이나 엘리트 수준의 유소년 클럽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때도 부모들이 꺼내는 얘기는 대개 거기서 거기다. “아이가 운동신경이 좋다. 발도 빠르다.” 이런 설명은 거의 고정 레퍼토리다. 여기에 축구 센스가 있고 상황 판단 능력까지 뛰어난 것 같다는 말도 종종 따라붙는다. 그래서 선수로 키워 보고 싶다는 것.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 중에는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산하 유소년 팀에 입단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드물다. 대개는 “축구는 취미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믿고 싶지 않은 말을 듣고 돌아서야 한다.
야구 소년의 아버지는 스즈키 노부유키다. 미국 프로야구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뛰고 있는 스즈키 이치로가 아들이다. 이치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는 지역 유소년 야구팀을 가르쳤다. 야구 문외한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아들의 야구에 관해선 모든 것을 감독에게 맡겼다. 아버지는 이치로의 고교 감독에게도 똑같은 부탁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잘해도 칭찬하지 말라는 것. 아들이 항상 목표를 높게 잡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홍명보 항저우 그린타운(중국) 감독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2014년 3월 축구 선수 자녀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현장에서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강연에서 홍 감독은 “축구에 관한 자녀의 성장은 전문가인 지도자에게 맡겨야 한다.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 잘한다고 칭찬하고, 못한다고 나무라고 하는 일희일비는 특히 피해야 한다”고 했다. 홍 감독은 “일단 아이를 맡겼다면 기술적인 조언은 감독과 코치의 몫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헷갈린다. 그리고 부모 눈치를 보면서 부모를 위해 운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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