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기계라 불리던 김현수, ML 초반 새 환경에 당황 부진했듯
국내 외국인 선수도 적응시간 필요… “몸값 못한다” 성급한 비난 말고
이해하고 기다리면 백조 될 수 있어
“벤치에 있을 때도 자신감이 충만했다. 지금도 자신 있게 하려고 한다. 매 경기 내가 선발 라인업에 들 것이라는 마음으로 대비하고 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겠다.” 지난달 30일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홈런을 친 볼티모어 김현수(사진)의 소감이다. 마이너리그 거부권까지 행사하는 굴곡 끝에 맛본 홈런인데 소감이 영 싱겁다. 고작 ‘자신감’이라니….
올 시즌 ‘히요미(히메네스+귀요미)’로 불리며 최고 인기 스타로 떠오른 히메네스(LG)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변화구에 속절없이 방망이를 돌려대 LG 팬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았다. 지난해 히메네스는 볼넷 1개당 삼진을 4번이나 당했다. 하지만 올 시즌 히메네스는 볼넷 1개당 삼진을 1.47개로 줄였고 홈런왕까지 다투고 있다. ‘진화’의 비결을 묻자 히메네스 역시 ‘자신감’을 꼽았다. “말을 빨리 배워 선수단에 융화된 게 도움이 됐다”는 그는 지난해 시즌 중반에 합류하고도 동료들이 실수를 하면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놔둬라,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해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이제는 각 팀의 ‘복덩이’로 자리 잡은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생활 3년 차인 필(KIA) 역시 2014년 시범경기의 타율은 0.121에 그쳤다. 필은 “처음엔 홈런이든 장타든 쳐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자연스럽게 편해졌다”고 말했다. 올 시즌 재계약에 성공한 각 구단 15명의 외국인 선수도 ‘2스트라이크 이후 변화구 승부’와 ‘타자들의 커트 능력’을 한국 야구의 특징으로 꼽았지만 자신의 야구 스타일을 바꿀 정도의 기술적 차이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 미국 무대를 밟은 김현수가 그랬듯 처음 한국 무대에 선 외국인 선수들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해커(NC)는 “원정 유니폼을 호텔에서부터 입고 경기장에 가는 등 사소한 것부터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켈리(SK)도 “지금은 팬들의 응원가가 큰 힘이 되지만 처음에는 투구에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우리에겐 당연했던 모든 게 이들에게는 적응해야 할 ‘새 환경’이었던 셈이다.
롯데의 효자 외인 3인방인 린드블럼, 레일리, 아두치도 성공적인 정착 비결에 대해 “한국 구단은 이미 다른 리그에서 보여준 실력을 근거로 외국인 선수를 뽑는다. 자신감을 갖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들 역시 한국 정착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건 ‘실력 차’가 아니라 ‘야구는 팀 스포츠라는 기본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라고 강조했다. 한 베테랑의 표현을 빌리자면 “홈런을 치고 들어와도 동료들이 하이파이브 한 번 안 해주면 슬럼프에 빠지는 게 야구”이기 때문이다.
린드블럼은 후배 박진형이 첫 승 선물로 ‘차를 사 달라’고 하자 최고급 장난감 자동차를 야구장에 들고 왔다. 니퍼트(두산)는 맞은편에서 한국인 통역이 빵을 먹을 때 깍두기를 먹는다. 해커는 “동료들과 어떻게 하면 잘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하니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NC는 올 시즌부터 한국에 오래 거주한 미국인 코디네이터가 외국인 선수들의 한국 적응을 돕고 있다.
많은 연봉을 주고 영입한 외국인 선수에게 큰 기대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은 30홈런-100타점, 혹은 10승의 능력치를 가진 게임 캐릭터가 아니다. 이들도 라커룸에서, 더그아웃에서 함께 울고 웃는 한 명의 팀원일 뿐이다. 볼티모어 김현수를 바라보듯 ‘한국의 김현수들’을 볼 때 미운 오리 새끼는 백조가 될 수 있다.
댓글 0